《“실수로 식판을 떨어뜨려도 발이 먼저 가요. 예전에 딸이 장식장 위에서 떨어지는데 뭐로 받은 줄 알아요? 손이 아닌 발이 먼저 가서 발등으로 받았어요(오영란).” 올림픽에는 수십 개의 종목이 있다. 이 중 골키퍼가 있는 종목은 축구 핸드볼 하키 아이스하키 수구 등 다섯 종목. 골키퍼는 최종 수비수로서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다. 하지만 이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적은 편이다. 축구 정성룡(23·성남), 아이스하키 손호성(26·한라), 여자 하키 문영희(25·KT), 여자 핸드볼 오영란(36·벽산건설)으로부터 골키퍼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 시켜서 혹은 비어서
처음부터 골키퍼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선택당했다는 표현이 맞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골키퍼를 원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보통 감독이 시키는 편이다.
정성룡은 원래 수비수였지만 골키퍼 자리가 비는 바람에 대타로 들어갔다가 지금까지 하게 됐다. 오영란은 “초등학생 때 골키퍼 테스트에서 덜컥 합격했다. 하기 싫어 다음 날 치마를 입고 갔는데도 감독님이 골대 앞에 세워 놨다. 그렇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웃었다.
야구를 좋아했던 손호성은 아이스하키에서 유일하게 글러브를 낄 수 있는 사람이 골키퍼여서 시작했다.
○ 내가 아파도 아픈 게 아냐
경기가 끝난 뒤 손호성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라커룸에 들어왔다. 그는 “10kg이 넘는 보호 장비를 착용해도 그 틈새를 비집고 퍽(공)이 와서 맞게 된다. 오늘도 5군데나 맞아 멍들었다. 이런 날은 아파서 잠도 못 잔다”고 말했다.
막는 것이 일이다 보니 공이 몸에 맞는 것은 골키퍼로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문영희의 말을 빌리면 ‘얼굴로 공이 날아오면 눈을 감기도 전에 맞는다’고 한다.
오영란은 “유럽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 일부러 얼굴 쪽으로 공을 던지는 것이 느껴진다. 얼굴에 맞으면 머릿속이 울리면서 자리에 주저앉아 울게 된다”고 말했다.
○ 막으면 당연, 못 막으면 역적
“선수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공격수는 실수를 해도 골을 넣으면 만회가 된다. 하지만 골키퍼의 실수는 바로 골로 연결된다. 직접 골을 넣을 수도 없고 만회할 방법이 없다.”(손호성)
골키퍼는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자리다. 문영희는 “강팀이 아닌 약팀과 경기할 때 공이 오지 않으면 느슨해지기도 한다. 이럴 때 실수할 가능성이 커 더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특히 역전골, 결승골을 먹었을 때는 더하다. 정성룡은 “동료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동료들이 격려해 주는 덕분에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 골키퍼는 붕어빵의 ‘앙꼬’
골키퍼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경우는 드물다.
정성룡은 “나 혼자 잘해서 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팀이 잘해야 내가 돋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골키퍼는 팀의 중심이 되고 나머지 선수들에게는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는 중요한 존재다.
문영희는 “들어갈 뻔한 공을 막아내면 경기의 흐름이 바뀐다. 그만큼 골키퍼의 역할은 크다. 팀의 사기를 높일 수도, 꺾을 수도 있는 존재가 골키퍼이다”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