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골병 이상민 이 악물고 뛴다

  • 입력 2008년 11월 17일 08시 18분


농구 코트서 25년…퇴행성요추질환 불구 투혼의 골밑대시

“쟤 아버지는 NBA에서 7년을 뛰었다던데….”

14일, 대구실내체육관. 모비스와의 경기를 앞둔 이상민(36·서울삼성)은 에반 블락(24·202.7cm)을 가리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블락은 경기당 평균득점과 리바운드에서 용병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삼성의 애물단지. “집이 잘 살아서 그런지 별로 의욕이 없는가 보다”라고 농을 친 이상민은 허리를 짚었다.

허리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이상민은 4번과 5번 요추에 문제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퇴행성질환이다. 한국나이로 서른일곱. 25년간 날아다니면서 받은 착지의 충격은 고스란히 허리로 전달됐다. “이제 늙어서 그렇다”며 웃는 이상민. 최근에는 연습경기도 제대로 못 뛰는 실정이다. 허리보강운동 정도만 소화하는 탓에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팀 사정은 쉴 형편이 못된다.

지난 시즌 삼성의 팀 득점은 1위(86.1점). 하지만 올시즌에는 9위(80점)로 곤두박질 쳤다. ‘있는 둥 마는 둥’ 용병 한 명의 자리가 컸다. 그래서 이상민은 “잡을 수 있는 경기만큼은 필사적으로 뛰고 있다”고 했다. 외곽에서 패스만 찔러준다면 체력을 비축할 수도 있지만 그는 외곽득점과 과감한 돌파까지도 책임져야 한다. 이상민은 “가뜩이나 점프도 제대로 안되는데, 체력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라면서 “그래도 일단은 블락을 잘 가르쳐 보겠다”고 했다.

노장의 투혼을 알았을까. 블락은 16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시즌 최고의 활약(13점·12리바운드·5어시스트)으로 팀의 2연패 사슬을 끊었다. 중반부터 점수를 벌린 덕분에 이상민도 14분가량만 출전하며 몸을 아낄 수 있었다. 삼성 안준호 감독도 “오늘처럼만 해준다면 계속 좋은 경기가 가능할 것”이라며 웃었다.

15년 전. 가녀린 손끝으로 3점 슛을 던지던 말간 얼굴의 대학생은 이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됐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가드들을 악착같이 따라붙던 그 승부근성 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지금의 이상민을 있게 한 힘. 수억원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조금만 아프면 “못 뛴다”며 손사래를 치는 프로세태에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감도 크다. 후배가드 이정석(26·삼성)은 “(이)상민 선배에게 배우는 것은 농구 기술만이 아니다”라고 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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