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중 2학년 사이드암 투수 박진태(14) 군은 호리호리하다. 키는 167cm인데 몸무게는 50kg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팀의 에이스다. 야구밖에 모르는 ‘베이스볼 키드’다.
박 군의 부모는 모두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다.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인 그의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잇고 있다.
박 군은 여름방학이 시작된 7월 말부터 한 달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야구단 회비 30만 원을 3개월째 밀리면서 일부 학부모들이 “회비를 안 낸 야구부원이 야구를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 군은 방과 후 야구부원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셋집 옥상에서 바벨을 들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박 군의 얼굴은 해맑았다. 가난의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박 군의 등번호는 1번. 야구부 선배들이 “한국 최고의 투수가 되라”며 준 선물이다.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5도까지 내려간 18일. 박 군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성남중 운동장에서 열린 경기 부천중과의 연습경기에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얼어버린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어깨가 빠져라 공을 던졌다.
경기를 마친 박 군은 싱글벙글했다. 이날 2이닝 동안 1안타 무실점. 그보다 몸집이 2배는 커 보이는 상대 타자들을 땅볼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는 뿌듯함 때문인 듯했다.
휴게실에서 만난 박 군의 양말 양쪽에는 큰 구멍이 나 있었다. 그는 “경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자주 양말에 구멍이 난다”며 활짝 웃었다.
아버지가 야구단 회비를 3개월이나 못내 야구를 못하게 됐을 때 박 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오히려 걱정했다.
박 군이 야구를 하는 이유는 가족을 위해서다. “부모님과 세 명의 동생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그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성남중 박성균 감독은 “진태는 공 끝이 좋고 제구력이 뛰어나 체력만 보완하면 크게 성장할 선수”라고 말했다.
박 군이 좋아하는 선수는 시속 150km대 강속구를 던지는 일본 야쿠르트의 마무리 임창용과 SK 마무리 정대현. 프로에 진출해 신인왕이 되는 게 그의 꿈이다.
대한야구협회에 따르면 11월 현재 전국에 중학교 야구부는 78개교 1634명에 이른다. 이들 학교에 1, 2명씩은 박 군처럼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그런 박 군에게 따뜻한 소식이 전해졌다. 프로야구 LG 구단이 박 군처럼 생활이 어려운 서울지역 야구 꿈나무 10명에게 1년 치 야구단 회비와 간식비로 500만 원씩 지원하기로 한 것.
LG는 30일 오후 1시 잠실구장에서 이들을 초청해 사랑의 걷기대회와 김재박 감독, 유지현 코치가 참가하는 스페셜 야구 경기 등 ‘러브 페스티벌’을 연다. LG는 해마다 야구 꿈나무를 지원하는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