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경쟁력]⑫오버추어 김 제임스우 사장의 ‘게임’

  • 동아닷컴
  • 입력 2008년 11월 29일 16시 25분


검색광고 업체 오버추어코리아 김제임스우(46·한국명 김정우) 사장은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경영자(CEO) 자리만 세 번째 맡고 있다.

2005년 2월 오버추어코리아 대표를 맡은 뒤 회사 매출을 2배 이상 증가시킨 실적을 인정받아 2006년 3월 아시아 지역 총괄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같은 달부터 지난해 8월까지 오버추어 재팬 대표이사도 지냈다. 지난해 4월부터는 야후!코리아 대표이사까지 맡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때 괌으로 이민을 간 뒤 대학, 대학원을 모두 미국에서 나왔다. 지연 학연 등 아무런 '연줄'이 없는 바닥에서 그가 세 번씩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는 "모든 비즈니스와 인간관계에 게임처럼 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코올 경영이론'으로 게임하기

3년 전,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갑자기 지사장으로 나타난 그를 선뜻 '보스'로 인정하는 오버추어 코리아 직원은 별로 없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온 업무 처리 방식을 바꾸고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앞세워 수시로 미국 본사와 마찰을 빚던 분위기를 개선하려 시도했지만, 여전히 직원들 사이에서는 '저러다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는 직원들과 친해지기 위해 기본부터 충실히 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시 한 것은 '시간 지키기'였다. 평사원과의 약속이라도 반드시 10분전에 가서 기다리고 수시로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벽 깨기'에 주력했다.

아무런 '연줄'이 없었지만, "학연 지연이 없어 오히려 대화가 편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의 눈에 '술'이 보였다.

IBM, AT&T와 인터넷 부동산 기업인 코코란 등 미국에서 경영수업을 한 그는 "회사 경영에 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미국에서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람들 사이에 '술 한 잔 해본 사이'인지 아닌지가 친밀감의 척도로 곧잘 거론되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형태의 'MBA(Management By Alcohol·알코올 경영이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미국 회사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일이지만 당장의 현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된다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 동안 술을 마셔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 간은 튼튼했다"는 김 사장은 술자리에서 직원들을 처음부터 '폭탄주'로 압도했다.

1차 저녁식사 자리에서부터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만들어 쉬지 않고 돌리며 자리를 제압했다. 초반부터 공세적으로 시작된 술자리는 오후 8시반경이면 끝이 났고 김 사장은 직원들이 모두 귀가한 것을 확인한 뒤 집에 돌아가 TV 9시 뉴스를 시청했다.

새로운 'MBA'는 효과가 있었다. 그와 직원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거리감이 사라졌고 점차 친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매출이 1년 만에 2, 3배 성장하자 그에 대한 신뢰는 더욱 두터워졌다. 미국 본사는 그를 오버추어 재팬 사장직도 겸임시켰다.

그는 "한국과 문화가 비슷한" 일본 지사 직원들과도 술로 맞섰다.

신임 사장을 '길들이기' 위해 오버추어 재팬의 소문난 술고래 3명이 회식 자리에서 정종을 들고 도전해 왔지만, 김 사장은 한국에서 단련된 폭탄주 실력으로 그들을 쓰러뜨렸다.

김 사장은 "처음에 내게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술자리를 통해 우군으로 바뀌곤 했다"면서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관계 형성을 문화적 특성에 맞게 이뤄낸 셈"이라고 말했다.

● "사장을 이겨라"

그가 '알코올 경영'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버추어 코리아, 오버추어 재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4월, 3번째 CEO인 야후!코리아 사장에 부임했을 당시였다.

야후!코리아 역시 처음에는 신임 사장을 뜨악하게 대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다음 등에 밀려 기울어 가던 터라 회사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이번에는 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동맥경화증에 걸린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뚫는 게 급선무였다.

그는 사내 블로그를 만들어 솔직한 의견을 공개하는 한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블로그나 이메일 또는 직접 사장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권했다.

아무리 "솔직히 말하자"고 해도 나서던 사람이 없던 때, 누군가 냉랭한 분위기를 깼다.

한 젊은 직원이 "사무실에 있는 음료수 자동판매기를 돈을 넣지 않고도 이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한 것.

다들 아연실색했지만 김 사장은 즉시 그의 요구를 수용했다. "솔직히 말 하라"는 표현에만 그친 게 아니라 "말 하면 나는 듣는다"는 '액션'을 보여주었다.

그 뒤로 회사 내에 막혀 있던 의사소통이 서서히 뚫리기 시작했다. 말 안하고 오해했던 부분, 업무 처리 방식의 문제점, 서비스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들이 블로그와 이메일 등을 타고 흘렀다.

내리막길을 걷던 야후!코리아의 페이지뷰와 순방문자 수는 그가 취임한 지 6개월 뒤인 지난해 10월 반등을 시작해 꾸준히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형 서비스로 개편한 뉴스서비스 페이지뷰도 올해 초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인공위성 사진을 이용한 '글로벌 지도 서비스', 다른 나라 야후! 이용자와 함께 사진을 공유하는 '플리커', 용량 무제한 e메일 서비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만 게임처럼 푸는 게 아니라 직원들과 실제 게임을 곧잘 하는 것도 김 사장의 특징이다.

오버추어와 야후!코리아 본사에는 탁구대가 마련돼 있다. 그는 수시로 '제임스 사장을 이겨라, 탁구 한 판!'이라는 대회를 열고 사장을 이기는 직원에게는 상금 10만원을 즉석에서 제공한다.

누구보다 승부근성이 강한 김 사장이 거둔 그간의 승률은 약 80%.

김 사장이 탁구를 치면서 중요시 하는 것은 승패가 아니라, 게임에 임하는 직원의 태도다.

그는 "승부근성이 강한 사람이 일도 잘 한다"며 악착같이 이기려고 애 쓰는 직원들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고 한다.

그가 주최하는 탁구대회는 업계에도 소문이 나 최근에는 거래관계인 한 광고 제작업체의 임직원 10명이 '10대10' 탁구에 도전해 왔다. 각 팀이 10명씩 참여하는 단체전을 열자는 것.

그들은 10만 원대 선수용 라켓까지 준비해 왔지만 승리는 2000원짜리 라켓으로 맞선 김 사장과 직원들의 몫이었다.

김 사장은 시합이 끝난 뒤 "비즈니스도 그렇듯, 탁구 역시 좋은 장비가 승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 테니스로 익힌 게임 감각

그의 생애 첫 번째 '게임'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미국 보험사인 AIG 지사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괌으로 이민 간 그에게 새로운 환경은 낯설고 두렵기만 했다. 말도 안통하고 다르게 생긴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 때 큰 힘이 됐던 게 테니스였어요.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테니스를 곧잘 할 줄 알았던 덕택에 소외되지 않았고 같이 경기를 하면서 말도 늘었지요."

그때도 테니스를 재미로만 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고 그 덕에 '놀이'를 넘어 '게임'이 된 테니스 코트에선 늘 불꽃이 튀었다.

UCLA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진학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도 기억에 남는 테니스 경기가 있었다.

1991년 당시 하버드에는 미국 동부와 서부 지역 출신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이중 하버드, 예일, MIT 등 학부를 동부 지역에서 마친 학생들은 UCLA 등 서부 대학 출신들을 은근히 깔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서부의 UCLA를 나온 김 사장은 특히 그런 분위기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테니스 시합이 열렸다. 김 사장을 비롯한 동, 서부 출신 학생 64명이 출전했다.

1차전에서 동부 출신 상대를 만난 그는 마치 수십만 달러 상금이 걸린 US오픈이나 윔블던 대회인 것처럼 혼신을 다했다. 결국 1회전에서 상대를 이긴 김 사장은 여세를 몰아 우승까지 했고, 이 소식이 지역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죽을힘을 다 해 승리를 거머쥔 경험은 이후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상대이든 지레 주눅 들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맞서 이길 수 있다는 그의 자신감의 원천이 됐다.

● 미국서 태어난 두 아들 "영어 너무 어려워요"

그가 두 아들(13, 11세)에게 강조하는 것은 태도(attitude), 실력(skill), 노력(effort) 세 가지다.

태도가 좋고, 실력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늘 강조한다.

두 아들은 미국 국적이지만 미국에서 학교를 보내지 않고 굳이 한국에 데리고 온 것도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공부하는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는 믿음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가 더 편한 그의 아들들이 요즘 학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과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다.

말은 잘 하지만 한국식 영어문제에 익숙지 않아 문제 푸는 방법을 학원에서 배우고 있는 것.

"영어가 너무 어려워서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고 아들들은 종종 하소연 하지만 도전하고 겨뤄서 이기는 데 익숙한 아버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김 사장은 "어릴 때부터 CEO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왔고 도전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승부에 대한 집념으로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며 "인터넷 강국 한국의 역량을 세계로 알릴 수 있도록 지금 하는 일에서 내 생애 최고의 승부를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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