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꺽다리 중학생, 배구공 잡다
중학교 3학년 때만 해도 김학민은 그저 농구를 좋아하는 키 큰 평범한 학생이었다. 당시 키가 183cm. 큰 키에 점프력이 뛰어나고 운동 신경이 좋은 아들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아버지가 지인의 소개를 받아 배구부가 있는 구운중에서 테스트 받아볼 것을 제의하면서 배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로 참가한 그 해 여름 구운중 여름 전지훈련. “한 달 만 해보고 집에 간다”고 굳게 마음먹었지만 자꾸만 손에 잡히고 눈에 아른거리는 배구공 생각에 결국 배구를 ‘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굉장히 적극적이셨어요. 진짜 한 달 만 있다가 빨리 나와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배구가 재미있어 지더라고요.”
배구를 너무 늦게 시작한 탓에 1년 후배들과 함께 중학교를 1년 더 다녔다. 첫 공식 경기는 99년 3월. 김학민은 “그렇게 떨리지 않았다. 나름 잘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소질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진준택 감독과의 만남
김학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게임으로 2007년 KOVO컵 우승을 꼽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학민은 중·고·대학교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작년 시즌 김학민은 우승의 기쁨과 동시에 큰 좌절도 맛봤다.
겨울 시즌이 시작된 후 보비의 그늘에 가려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내일은 나갈 수 있겠지, 다음 경기는 뛸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던 그도 점차 지쳐갔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진준택 감독과의 만남이 그에게는 터닝 포인트.
진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김학민에게 “용병은 레프트로 알아볼 테니 몸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김학민은 ‘나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독한 마음으로 시즌 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고 1라운드에서 득점 3위, 공격성공률 2위, 후위공격 성공률 3위, 서브 1위를 차지하는 맹활약을 펼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라운드 MVP는 덤. 김학민은 “좋은 감독님이 오셨으니 오래 모시기 위해서라도 올해 좋은 성적을 내겠다”며 진 감독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무뚝뚝한 청년. 삼성 기다려
“혹시 고향이 경상도?”
“아뇨.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는데요. 왜요?”
“아니, 좀 무뚝뚝한 것 같아서.”
“아, 하하. 제가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요. 나이답지 않게 보수적이라는 말도 많이 듣고요.”
“보수적?”
“저는 여자친구 치마도 못 입게 하거든요.”
그랬다. 김학민은 인터뷰 내내 무뚝뚝했다. 이상형도 청순한 스타일이란다. 시즌이 시작되면 여자친구를 자주 만나지 못하니 감정 표현이라도 살갑게 해야 할 텐데 그런 것도 못해 늘 구박을 받는다고. 그래도 “여자친구가 많이 도와주고 잘 이해해줘 3년 이상 만나고 있다”고 은근슬쩍 자랑을 늘어놓는다. 김학민은 음악을 전공하는 여자친구와 내후년 쯤 결혼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인터뷰 내내 무뚝뚝하던 김학민도 10일 벌어지는 삼성화재와의 원정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졌다.
대한항공은 V리그 출범 후 대전 원정에서 단 한 번도 삼성화재를 이기지 못했다. 개막전에서는 홈에서 삼성화재를 꺾고도 신치용 감독에게 “우리가 1승을 준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들어 선수들의 자존심이 팍 상했다. 김학민은 “이번에 반드시 꺾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꼭 와서 지켜보시라”고 신신당부했다.
용인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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