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배의 열린 스포츠] ‘큰 바위 얼굴’ 어디있나요?

  • 입력 2008년 12월 16일 08시 07분


한국야구에 ‘원로가 없다’는 말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야구계에만 원로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다.

지난(至難)한 우리 역사를 생각하면 혼자만 올곧게 산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 일이었으리라. 그럼에도 여러 가지 야구외적인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스토브리그를 보면 야구계의 어른 또는 상징적인 분이 계셨더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 프로야구 27년 역사에 팀마다 레전드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역할모델은 아직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역할모델이란 어린이와 청소년이 본받고 싶을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닮고 싶은 ‘큰 바위 얼굴’을 뜻한다. 즉 야구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승화시키는데 기여하는 인물일 것이다.

MLB에는 야구사(史)적으로는 베이브 루스가 있고, 역할모델로는 칼 립켄 주니어가 있다. 일본프로야구에는 나가시마 시게오가 있어 야구가 야구 이상의 가치를 갖게 했다. 어느 분야든 역할모델이 있어야 존재의 의의를 가진다.

한국 프로야구도 선수출신으로는 이만수, 김재박, 김용수, 박철순, 선동열, 장종훈, 송진우, 양준혁, 이종범, 이승엽 등의 레전드가 있고, 김응룡, 김성근, 김인식 등의 걸출한 야구지도자를 배출했지만 역할모델로까지 추앙받을 정도는 아니다.

훌륭한 기록을 남기고, 한 우물을 팠다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칭찬받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야구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팬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과 유의미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 ‘큰 바위 얼굴’이 필요하다. 야구를 통해 생계를 해결하고 성공한 야구인들은 보다 공적인 마인드가 요구된다. 한국 야구가 야구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근본원인도 여기에 있다.

적어도 축구계에는 차범근이라는 역할모델이 있다. 차범근을 역할모델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축구발전에 대한 유의미한 기여이다.

1989년 독일 분데스리그에서 은퇴한 세계적인 축구스타 차범근이 귀국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프로팀 지도자가 아닌 유소년 축구단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1990년 차범근이 만든 ‘유소년 축구교실’은 지금 생각해도 선지자적인 발상이며, 한국 축구역사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감독으로서 차범근은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지만, 축구인 차범근은 진정 한국축구의 역할모델로 평가될 것이다.

최근 모 프리랜서 야구기자의 블로그에서 ‘꿈의 구장’ 프로젝트라는 기치아래 야구기부, 아마추어 야구조명, 야구역사기록과 관련된 자원봉사자 모집과 활동들을 보며, 야구인의 길과 역할에 대해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구기자’가 역할모델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야구가 발전하면 가장 큰 혜택을 볼 야구인들은 다시 한번 자문해 봐야 한다. 누가 야구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하면 한국 야구도 ‘큰 바위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를. 야구외적인 사건과 추문들의 근본원인이 선수 개개인에게만 있는지를. 적어도 ‘지도자급’에 있는 야구인들은 보다 큰 시야와 철학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동명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경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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