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구 이사장측은 22일 “프로야구는 정부와 관계도 중요한데 마찰까지 빚으며 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쯤에서 접겠다. 사장단이 더 좋은 분을 뽑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16일 프로야구단 사장단 조찬모임에서 만장일치로 사실상 차기 KBO 총재로 추대된지 6일만이다. 유 이사장의 전격하차로 KBO 신상우 총재 후임 문제는 또다시 격랑에 휩싸일 전망이다. ‘정치인 낙하산 총재’ 거부를 다짐하며 유 이사장 추대에 의기투합했던 사장단 모임의 자발적 결정이 정확히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외압에 의해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KBO는 후속 대책 논의를 위해 23일 이사회를 강행한다.
○외압 작용했나?
겉으로 드러난 정황으로는 적어도 20일까지는 유 이사장측도 평온했다. 정치권 일부와 문체부에서 제기된 불쾌감에 대해 대응을 자제하며 추대 절차가 마무리된 뒤 제시할 비전을 차분히 숙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1일 오후 상황이 돌변했다. 유 이사장과 정부 고위인사 간에 직접 만남이 이뤄졌고 이후 유 이사장의 태도가 급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는 유 이사장 추대 사실이 알려진 직후 “총재 추대 전 사전협의 관례를 어겼다”며 고위 채널을 통해 KBO를 압박했다. 문체부 최종학 체육국장은 유 이사장의 중도하차 사실이 알려진 22일 낮 ‘스포츠산업 중장기 계획’ 발표 기자간담회에서도 절차상 문제를 거듭 지적했다. 과거 KBO 총재를 정부에서 낙점하던 시절의 관행을 재언급한 것이다.
○KBO 총재는 정치권의 전리품?
신상우 총재의 후임자에 대한 소문은 올 여름부터 무성하게 유포됐다. 당시부터 줄기차게 차기 총재로 회자된 인물이 박종웅 전 국회의원이다. 박 전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이다. 유 이사장의 낙마로 자연스레 박 전 의원이 차기 KBO 총재로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3년 전 박용오 전 총재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동문(부산상고)인 신상우 현 총재를 둘러싼 인맥에 떠밀려 밀려난 바 있다. 사상 처음이자 유일한 ‘민선’ 총재였던 박용오 전 총재는 원만하게 대업을 수행하고도 ‘정치적 거래’의 희생양이 됐다.
○원점에서 재출발?
23일 KBO 이사회가 주목받게 됐다. 유 이사장의 전격하차로 KBO는 물론 사장단도 곤혹스런 표정이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게 인식한 눈치다. 정치권의 움직임이다. 프로야구단 사장과 구단주들이 또다시 ‘정치권의 거수기’로 전락할지, 아니면 초심대로 ‘KBO 바로 세우기’에 진력할지, 그 시발점은 23일 KBO 이사회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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