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예상치 못한 큰 관심을 보내 주셨어요. 두 달 정도 지나니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태권도 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던 그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다 2001년 교통사고를 당했다. 두 다리를 잃자 삶의 의욕을 잃었지만 운명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다. 재활 과정에서 총을 잡은 것도, 당시 간호사였던 지금의 아내 박경순(31) 씨를 만난 것도 그의 표현대로 행운이었다.
4년 전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006년 부부가 됐다. 처가에서 반대했지만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지금 장인과 장모는 누구보다 든든한 그의 후원자다.
이지석은 지난해 10월 오세아니아 대륙 간 그랑프리에 이어 유러피언 오픈 선수권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장애인 사격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2005년 만난 배병기 감독님께 감사드려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엘리트 사격 대표팀을 지도했던 분인데 저와 아내가 함께 대회에 나간 걸 보시고 ‘너의 강점은 확실한 보호자가 있다는 것이다. 호흡만 잘 맞추면 누구보다 강해질 것이다’라며 도와주셨어요. 지금 하고 있는 동계 훈련 프로그램도 그분이 짜 주셨죠.”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으면 다툴 일도 많지 않을까.
“몸이 불편한 게 오히려 장점이에요. 다른 부부는 24시간 같이 있기 힘들잖아요. 저는 밥 먹을 때, 운동할 때, 잠을 잘 때도 아내가 있어야 하는데 행운이죠.”
베이징에서도 아내는 항상 그의 옆에 있었다. 척수장애라 상체 힘이 부족한 남편의 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격발 이전에 필요한 일은 모두 박 씨의 몫이었다. 금메달이 확정될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자 환하게 웃었다.
그는 여전히 소속팀이 없다. 메달 획득으로 받게 된 연금이 유일한 고정 수입. 기사에서 빼달라고 했지만 이 부부는 해외의 한 어린이를 위해 후원금을 내고 있다. 최근에는 1000만 원을 장애인 청소년 체육을 위해 내놨다. 태극 마크를 달 수 있어 자랑스럽다는 그의 작은 소망은 태어나고 자란 남양주시 로고를 달고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부부’는 큰 경사를 앞두고 있다. 어렵게 인공 수정에 성공한 박 씨가 내달 초 출산을 앞두고 있는 것. 23일 이지석은 태어날 아이의 방을 꾸미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와 아내에게는 행복한 2008년이었어요. 하지만 장애인 체육 발전을 위해 저보다 훨씬 더 고생한 많은 분을 생각하면 웃을 수만은 없네요.”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