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과 평가의 계절] 타짜가 된 타자…짜고 친 결승타?

  • 입력 2008년 12월 29일 08시 42분


어떤 조직에서든 인사 시스템은 채용, 적재적소 배치, 능력 평가, 보상, 능력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구단이 보유한 선수단도 신인 스카우트, 포지션 변경 등 용어만 바꾸면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 차이점이라면 프로선수는 능력 평가가 일반직장인보다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이다. 일반회사의 영업부에 속하면 그나마 개인 역량의 수치화가 가능한 편이지만 총무·기획·인사 업무를 하는 직원에 대한 역량 평가는 결코 쉽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면 종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프로선수에 대해서는 기준만 잘 정하면 개인의 플레이를 얼마든지 점수화할 수 있다. 점수화가 가장 용이한 편인 프로야구 같으면 단타가 1점이면 4루타인 홈런은 4점이고, 같은 안타라도 주자가 있을 때는 2배로 정했다면 곱하기 2를 하는 식이다.

구단 또는 감독이 추구하는 팀 컬러에 따라 평가항목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프로야구의 경우 수백 가지 항목을 객관적인 수치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보상은 개별선수가 취득한 점수를 전선수가 취득한 점수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전체 연봉에서 비례 배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단, 계약기간이 끝나 선수의 신분이 변하게 되면 별도의 보상이 주어질 수 있지만 고용된 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의 질에 대한 평가와 보상이 상대적으로 객관적일 수 있다는 게 다른 분야와의 차이다.

여름종목이 지금 평가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장황하게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 ‘프로야구선수의 사인 거래’라는 기사를 보고 옛날에 있었던 재미있는 해프닝이 떠올라서다. 지금은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선수평가업무를 맡고 있을 때 상대방 사인을 간파한 선수에게 플러스 점수를 주는 고과항목이 있었다.

2루에 나간 주자가 상대 투·포수가 주고받는 사인을 간파해 투수가 던질 구질이나 코스를 타석의 타자에게 전달해 타자가 안타를 치면 두 선수에게 가산점을 주는 항목이었다. 동네야구만 해봤지 그런 고급 플레이를 구경한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항목만큼은 전적으로 두 선수가 상대팀 암호해독에 성공했다는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시간 경기 보고 또 3시간 비디오로 복습을 반복하던 어느 날 두 선수의 위증 한건을 적발한 적이 있었다. 2루에 나간 선수는 상대방 사인을 변화구로 해독했고 타자는 그걸 접수해 결승타를 쳤다는 주장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변화구가 아니었다. 재차 비디오로 빠른 공임을 확인한 뒤 두 스타플레이어 선수에게 물증을 들이대고 가산점을 반납 받고서는 대단한 사건을 파헤쳤다는 듯이 혼자 뿌듯해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바꾸는데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 없었다. 좀 지나 포수가 달라는 대로 던지고 싶어도 못 던지는 투수가 태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야구선수의 사인 거래는 사건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정희윤 스포츠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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