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피플] 제주 유나이티드 조용형 ″홍명보 선배 넘고 싶다″

  • 입력 2008년 12월 29일 14시 48분


“한국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홍명보 선배를 넘고 싶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중앙 수비수였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를 동경했던 한 축구선수가 이제는 당당하게 그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주인공은 제주 유나이티드의 간판 수비수 조용형(25).

조용형은 동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수비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며 “한국축구의 전설 홍명보 선배를 넘는 수비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제2의 홍명보’로 기억 되는 것보다 ‘제2의 조용형’이란 수식어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인정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조용형의 축구인생은 그다지 평탄치 않았다. 2005년 그의 프로입문을 두고 부천SK(현 제주)와 고려대 사이에서 마찰이 생기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특히 환상적인 프로 데뷔시즌을 보냈음에도 경남과 성남으로 강제 트레이드 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마음 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배신감이 솟구쳤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모든 아픔을 극복했다. 실력만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믿으며 꿋꿋이 실력 향상에 매진한 뒤 올 시즌 친정팀 제주로 돌아와 화려하게 비상(飛上)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 덕분에 대표팀에도 꾸준하게 이름을 올린 조용형은 한국 최고의 수비수가 되겠다던 퍼즐을 하나하나 완성해나가고 있다.

현재 K-리그 종료 이후 인천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는 조용형은 지난 20일 대표팀에서 평소 친분을 쌓은 골키퍼 정성룡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유니폼 대신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었다. 결혼식이 끝난 뒤 한 카페에서 조용형과 솔직담백한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조용형 선수와의 일문일답>

◆ 강제 트레이드의 아픔…실력으로 극복

Q. 어떻게 축구를 시작하게 됐으며 언제 수비수로 전향했는가?

A. 초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당시 감독님께서 많이 예뻐해 주셨다. 중학교 때까지 미드필더를 맡았고,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수비수로 전향했다.

Q. 이천수, 최태욱, 박용호 등 많은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시킨 ‘축구명문’ 부평고등학교를 나왔다.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해 달라.

A. 내가 입학했을 때 (이)천수형, (최)태욱이형, (박)용호형이 졸업반이었는데, 형들의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 당시 3학년에 잘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 함께 경기를 해볼 기회는 없었다. 후배들에게는 존경스러운 선배들이었다.

Q. 이후 고려대학교를 진학했다. 대학생활은 어땠는가?

A. 평범한 선수였고 열심히 했던 기억밖에 없다. 선수들 실력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누가 더 노력하느냐에 따라 밝은 미래의 보장 여부가 판가름 난다고 생각했다.

Q. 부천SK(현 제주)에 입단했을 때의 느낌과 데뷔 시즌 K-리그 베스트11에 뽑힌 소감은...

A. 고려대와 마찰을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입문할 수 있었다. 이후 신인 선수가 바로 베스트멤버로 기용될 수 있었다는데 기분이 좋았다. 내가 생각해도 환상적인 데뷔시즌을 보냈던 것 같다.

Q.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낸 뒤 경남과 성남으로 트레이드 되는 아픔도 겪었다.

A. 솔직히 강제 트레이드였다. 경남 이적 통보는 충격이었다. 경남으로 둥지를 옮긴 뒤 곧바로 브라질 전지훈련을 떠났는데, 공항에 내리자마자 박항서 감독님께서 “용형이는 짐 내리지마”라고 말씀하셔서 당혹스러웠다. 알고 보니 다시 성남으로 이적된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혼자 돌아왔다.

Q. 본인의 의사가 무시된 트레이드에 배신감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A. 이런 일은 K-리그에서 흔히 일어난다. 선수들은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받아들여야만 한다. 당시 배신감을 느꼈지만 부천과 나쁜 관계를 형성하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제주가 나를 불렀을 때 흔쾌히 허락할 수 있었다.

Q. 올 시즌 제주가 K-리그 14개 구단 중 최소 실점부문 4위를 차지했다. 중앙수비수 조용형 선수의 공이 컸다는 말인데...

A. 최소 실점부문 4위라는 소식은 처음 들었다. 항상 실점을 줄이는 경기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공격력이 약해 수비들도 버티는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년 시즌에는 1위에 도전해보고 싶다.

Q. 반면 득점부문에서는 12위를 차지했다. 빈약한 공격력에 대해 구단에 바라는 점이 있을텐데...

A. 개인적으로 팀 전력 향상을 위해 좋은 공격수 영입을 바라고 있다. 현재 제주 입장에서 어느 정도 완성된 선수가 들어온다면 분명 전력은 상승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단의 자금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Q. 최근 임의탈퇴로 공시된 이천수 선수에게 고등학교, 대학교 직속후배인 조용형 선수가 러브콜을 보낸다면, 이천수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나?

A.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워낙 몸값이 높은 선수이고, 제주가 천수형을 잡을 자금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제주는 천군만마를 얻은 격일 것이다.

◆ ‘제2의 홍명보’가 되는 것보다 ‘제2의 조용형’란 수식어를 만들고 싶다.

Q. 벌써 프로 4년차다. K-리그는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A. K-리그에서 참 많은 일을 겪었다. 4년간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을 때고 있었고, 부상으로 고통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각 팀마다 특색을 파악해 경기 전 이미지트레이닝으로 완벽한 경기를 펼치려고 노력한다.

Q. K-리그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이면서 꾸준히 허정무호 승선 기회를 잡고 있다. ‘제2의 홍명보’란 별명도 얻고 있는데, 부담스럽지 않은가?

A.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웃음). 사실 홍명보 선배님의 플레이를 닮고 싶었고,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 기분 좋다. 하지만 더 큰 목표는 “‘제2의 홍명보’로 기억 되는 것보다 ‘제2의 조용형’이란 수식어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인정 받는 선수가 되고 싶은 것이다.

Q.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아랍에미레이트연합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실수로 실점을 허용했다. 당시의 심정은?

A. 라커룸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컨디션과 경기력도 좋았는데 한 순간의 방심이 골을 허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박)지성이형, (김)정우형 등 모든 선수들이 신경 쓰지 말라고 격려해줘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Q. 다른 팀에도 좋은 중앙수비수 자원들이 많은데, 자주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우선 제주 감독을 역임하셨던 정해성 코치님의 덕을 본 것 같다. 또 좋은 경기운영을 선보였던 것이 허 감독님에게 어필될 수 있었던 것 같다.

Q. 학교 선배 이천수와 대표팀 선배 박지성에 대해 말해 달라.

A. 후배인 내가 슈퍼스타 선배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하겠나. 그냥 느낀 점을 말한다면 능력 면에서는 천수형을 따라올 선수가 없는 것 같다. 감각적인 면도 탁월하다. 하지만 지성이형은 성실함으로 모든 것을 극복한다. 성실함이 지금 위치에 오르게 한 것 같다. 이것을 보면서 축구선수는 선천적으로 가진 것보다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 “내년에 결혼하고 싶어요”…수비수부문 베스트11에 도전할 것

Q. 수비수는 공격수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힘든 포지션이다. 그럼에도 수비수를 선택한 이유는?

A. 특급 공격수를 잘 마크했을 때, 무실점 경기를 펼쳤을 때, 공격수가 골을 넣는 것과 같은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수비수를 택하게 됐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저 내 위치에서 최선만 다한다면 부와 명예는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Q. 자신이 평가하는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A. 우선 단점은 수비수로서 크지 않은 몸집이라 선수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를 읽는 능력뿐만 아니라 킥의 능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Q. 유니폼 배번이 44번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A. 내 축구인생에서 4번은 행운을 상징한다. 프로에 첫 입문해 단 번호도 4번이었다. 그런데 제주에 늦게 합류한 탓에 이정호 선수가 4번을 먼저 달고 있어 어쩔 수 없이 44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Q. 팀 내 별명이 ‘용팔이’인 이유는?

A. 내 이름에 ‘용’자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선생님들께서 “용팔아! 용팔아!”라고 부르신 이후 용팔이가 됐다.

Q. 닮고 싶은 선수가 있는가?

A.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와 바로셀로나의 센터백 카를로스 푸욜을 좋아한다. 축구팬들은 수비수들은 좋은 신체조건을 지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칸나바로와 푸욜은 고정관점을 깬 선수들이다.

Q. 팀 내에서 도움을 많이 주는 선수와 친하게 지내는 선수는 누구인가?

A. 도움을 받기보다는 팀 내에서 중고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에게 도움이 줄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친하게 지내는 선수는 공격수 조진호 선수다.

Q. 휴식시간에는 무엇을 하며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A. 섬이라 정말 할 것이 없다. 선수들과 당구를 치던지 낚시를 하러 간다. 그리고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없다. 보신탕 빼고 다 잘 먹는다.

Q. 내년부터 J-리그에서 아시아쿼터제를 실시하는데,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가?

A.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해외리그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회가 된다면, J-리그 뿐만 아니라 다른 리그에서도 뛸 의향이 있다. 하지만 현재 제주가 워낙 하위권에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상위권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나의 임무인 것 같다.

Q.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 여자친구는 있는가?

동갑내기인 여자친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아교육 선생님이다. 하지만 제주도에 있다보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밖에 만날 수 없다. 수도권으로 원정경기를 가면 한 번씩 얼굴을 보곤 한다. 내년에 결혼하고 싶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실지 미지수.

Q. 2009년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는...

A. 앞으로 축구팬들에게 ‘조용형’하면 알 수 있을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또 부상 없는 한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내년에는 베스트11을 노려보고 싶다. 올해 6표차로 떨어져 아쉬움을 남겼다.

김진회 기자 manu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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