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의 포스트게임] 후진적 KBO 총재 인선

  • 입력 2008년 12월 30일 08시 13분


기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 가장 실망했던 게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인사다. 참여정부에서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게 국가정보원, 검찰청, 국세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의 제자리 찾기였다. 그랬던 참여정부가 민간단체인 KBO의 수장에 고등학교 선배이며, 야구와 전혀 연관이 없는 정치인 신상우 씨를 앉혔던 것이다.

그 때 ‘아, 노무현 정부도 별 수 없구나’라고 판단했다. 그토록 민주주의 절차를 강조했던 참여정부의 청와대 이너서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게 고작 이 모양인가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정권이 바뀌어 역시 개혁을 내세우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다. 그런데 이명막 정부는 한 술 더 뜨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야구단 사장들이 총재로 추천한 유영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을 절차상의 이유로 사실상 묵살해버렸다 이명박 정부에서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자리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국무위원인 장관자리도 아니고, 정책을 생산하는 데도 아니며, 좌파의 이념이 물들은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권이 개입될 곳도 아닌데 왜 그 자리에 목숨을 거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부가 KBO 총재 선임에 관여를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은 아직도 후진국이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올림픽 10위권 안에 진입한 체육강국에서 민간 스포츠단체의 장을 정부에서 임명하는 나라는 없다. 요즘같은 인테넷 시대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원년 WBC 4강에 진출하고 경제적으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은 프로야구 커미셔너를 정부에서 임명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창피한 일이다. 국가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 대한체육회도 정부에 간섭을 하지 말라는 판에 스스로 자립하는 프로야구에 낙하산 총재가 말이 되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때 정부의 규제 완화를 선언했다. 정부의 KBO 총재 선임 간섭은 이 대통령의 규제 완화와 정면 배치된다. 간섭은 규제나 다름없는 말이다.

최근 미국에서도 스포츠 구단에 정치권 인사 영입 시도가 있었다. 내년 1월 물러날 국무장관 곤돌리자 라이스 장관을 퇴임 후 NFL 샌프란시스코 49ers의 회장으로 모시자는 것이었다. 라이스 장관은 비록 여성이지만 풋볼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정치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라이스 장관의 영입 목적은 정치권의 폭넓은 인맥으로 49ers의 홈구장을 신축하려는데 있었다. 1971년 개장된 현 49ers의 홈 캔들스틱 파크는 구장으로 통하는 도로가 비좁고 낙후돼 있다. 그러나 49ers 입장에서는 아쉬웠겠지만 라이스 장관은 퇴임 후 스탠포드 대학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야구인들이나 구단 사장단이 그동안 힘있는 정치권 인사의 낙하산 총재 인선을 결사적으로 반대하지 않은 이유는 혹여 있을 압력과 기대감 때문이었다. 야구장 인프라 구축에 그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정치권 인사를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역대 KBO를 거쳐간 정치인 총재 가운데 인프라 구축에 주춧돌이라도 놓은 분이 있는지. 신 총재의 장밋빛 돔구장 청사진 발표는 휴지조각이 됐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후진국 티를 내지 말기를 바란다. 야구를 사랑하는 능력있는 인사가 총재로 영입돼 제2의 도약기를 맞은 한국 프로야구를 이끌고 갈 수 있어야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문상열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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