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3승 김하늘 신년 인터뷰] “이젠 성적보단 골프 자체를 즐기죠”

  • 입력 2008년 12월 31일 13시 37분


2부투어 2위 자격으로 정규투어에 데뷔한 2007년은 어수선했고, 투어에 적응하기 위해 몸무림 친 기간이었다.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우승 없이 얻은 반쪽짜리 성적표였다. 김하늘은 이를 악물었고, 2008시즌에는 상반기 2승과 하반기 1승을 포함해 3승을 올리며 단숨에 KLPGA 무대를 점령했다.

김하늘(2O·엘로드)이 기록한 3승은 모두 짜릿한 역전 우승이었고, 위기의 순간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를 선보인 덕분에 ‘하늘 사랑’이라는 팬카페까지 탄생시킬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챔피언이라는 수식어와 자연스럽게 따라온 상금, 든든한 후원사,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팬클럽까지. 김하늘의 골프 인생은 그녀의 웃음처럼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있지만 지금의 자리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도 많았다.

“내년에야 대학에 진학해요. 주위 친구들보다 2년가량 늦어졌죠. 하지만 그보다 중,고등학교 때 포기한 것이 많았어요. 예민한 시기에 학교도 잘 가지 못하고,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워요.”

오직 골프를 위해 접어둔 시간들이었다. 실컷 놀지 못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추억들을 포기해야했기 때문이다.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은 그녀는 이제 겨우 21살이다.

“골프를 떠나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한 번쯤이나 될까요? 사실 그마저도 골프를 완전히 잊는다기 보다는 잠깐 쉬는 거죠.”

일주일에 한 번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여가의 전부. 프로골퍼 김하늘이 아니라, 21살의 숙녀 김하늘을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지만 성적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프로에게 어쩌면 그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우승을 하지 못해 받았던 스트레스보다, 올해 우승을 하고 난 이후에 성적이 나쁠 때가 더 힘들었어요. 성적이 조금만 나빠도 왜 그랬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죠.”

팬들의 기대는 더한 중압감으로 다가오지만, 그녀는 이제 골프를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골퍼들의 기량은 모두 비슷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골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느냐죠.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아요. 골프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이제는 최대한 경기 그 자체를 즐기려고 해요.”

이렇게 그녀는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 더 높이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 시즌 3승, 그러나 여전히 목마르다

“1승도 거두지 못했을 때는 그렇게 연습을 하고 노력을 하는데도 왜 우승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어요. 진짜 슬럼프는 연습을 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데도 성적을 거두지 못할 때 오는 것 같아요.”

우승을 해보지 못한 프로들에게 우승이라는 것은, 뻔히 보이는데 뚫고 나갈 수 없는 투명하고 질긴 장막과 같다. “투어 경험을 쌓고 난 이후에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멘탈이에요. 나도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피나는 연습과 결합됐을 때 우승이라는 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하늘은 이전에 가르침을 받았던 김학서 프로에게서 멘탈 게임에 대해 새롭게 레슨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을 됐다고 말한다. 공개할 수 없는 자신만의 노하우라고 덧붙이면서. 멘탈과 함께 2007시즌 중반부터 데이비드 레드베터 아카데미에서 스윙을 고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자꾸 오버 스윙을 했어요.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면서 거리를 내려고 스윙이 점점 커졌거든요. 많이 노력했고, 최대한 간결하게 타이트 한 스윙을 하려고 노력했죠. 스윙 크기를 줄이면서도 거리를 낼 수 있는 노하우는 임팩트 순간에 볼에 힘을 싣는 거죠.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하죠.”

함께 투어 생활을 하며 주니어시절부터 캐디로 호흡을 맞춰온 아버지도 언제나 큰 힘이다. “스윙 레슨을 받을 때도, 멘탈 수업을 들을 때도 항상 아버지와 함께 배워요. 저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계시는 거죠. 흔들릴 때마다 대화를 통해 바로잡아주시기 때문에 늘 든든하게 투어생활을 할 수 있어요.”

○ 쇼트 게임 보강해 더 나은 활약 선보일 것

김하늘은 2008 시즌 3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두 번의 준우승과 세 번 3위에 머물렀다. 아쉬움이 남을 만했다.

“쇼트게임 특히 퍼트가 미흡했어요. 타수를 더 줄일 수 있었는데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렸죠. 동계훈련 기간동안 어프로치와 퍼트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생각이에요.”

김하늘은 12월 31일부터 한 달간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1월 말에 귀국해 곧바로 2월 초부터 호주와 하와이에서 열리는 대회에 차례로 출전, 숨 가쁜 시즌에 돌입한다.

“올해는 운 좋게도 목표라고 말해왔던 3승을 했지만, 사실 몇 승이라는 목표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단지 2009년 시즌이 끝났을 때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에요.”

김하늘은 2009년 일본이나, 미국 진출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한국에만 있으면 스스로에게 안주하게 될 것 같아요. 더 큰 무대에 도전하면서 성장하고 싶어요. 일본에나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겠죠.”

김하늘은 이제 우승하는 법을 알고 있고,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잘 쳤던 샷을 기억해낼 수 있는 여유도 얻었다. 그녀의 미소처럼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기술보다 훌륭한 무기다.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한 만큼, 새롭게 각오를 다시고 전지훈련을 떠나요. 훗날 줄리 잉스터(미국)처럼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면서 골프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프로로 남고 싶어요. 지금처럼 지켜봐주세요. 팬들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니까요.”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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