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줄 알았던 배구코트 걸레질… ‘마퍼’ 직접 체험해보니

  • 입력 2009년 1월 20일 03시 00분


1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올스타전에서 ‘1일 마퍼 체험’을 한 본보 김동욱 기자가 막대걸레로 코트를 닦고 있다. 홍진환 기자
1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올스타전에서 ‘1일 마퍼 체험’을 한 본보 김동욱 기자가 막대걸레로 코트를 닦고 있다. 홍진환 기자
막대걸레를 밀며 코트를 왕복하기 수차례. 체육복은 물론 속옷까지 땀에 젖었다. 다리는 어느새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났다.

작전시간 30초 동안 코트를 정리하는 마퍼(mopper·바닥을 닦는 사람). ‘왜 이런 무모한 도전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1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올스타전을 앞두고 이색 이벤트를 했다. 처음으로 팬에게 마퍼와 볼 레트리버(볼을 선수에게 배급하는 사람)를 할 기회를 준 것.

마퍼와 볼 레트리버는 그동안 체육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삼아 맡아 왔다. 기자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마퍼 지원서를 냈다. ‘경기 중 걸레질 몇 번 하는 거야 식은 죽 먹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경기 2시간 전. 체육복 안에 스웨터를 껴입었다. 방신봉 코트 매니저는 “나중에 더울 텐데요”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마퍼는 3인 1조로 운영된다. 막대 걸레를 들고 있다가 매 세트 8점, 16점 때와 작전타임 그리고 세트가 끝날 때 걸레질을 하는 역할이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코트 매니저의 사전 당부도 간단했다. ‘3명이 나란히 서서 똑같은 속도로 닦는다’, ‘방향 전환 때는 막대 왼쪽으로 몸을 넘긴다’, ‘반원을 그려 다른 편을 닦을 때 줄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등.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흐트러졌다. 땀은 비 오듯 했고 피로가 몰려왔다.

심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다른 쪽과 호흡을 맞춰서 닦고 빨리 자리로 돌아가세요.”

마퍼에 이어 걸레를 들고 선수들이 넘어지거나 땀을 흘릴 때 잽싸게 뛰어가 닦는 퀵 마퍼 역할이 주어졌다. 산 넘어 산이었다. 퀵 마퍼는 신속한 움직임이 필수인데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타이밍을 놓쳐 닦지도 못한 채 나오기 일쑤였다. 선수와 부딪히기도 했다. 얼굴을 알아본 일부 선수는 “왜 이런 일을 했느냐”며 깔깔 웃었다.

몸은 파김치가 됐고 경기 진행에 별 도움은 못 줬지만 그래도 모처럼 뿌듯한 하루였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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