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영, 유격수란 이름의 자존심

  • 입력 2009년 1월 20일 19시 55분


5년 전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우승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텍사스와의 10년 약속을 뿌리치고 양키스의 스프라이트 유니폼을 입었다.

당대 3대 유격수는 물론 역대로 따져도 손꼽힐 대형 유격수였지만 양키스 맴버가 되기 위해 그는 텍사스라는 팀도, 유격수라는 자존심도 버렸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훌륭한 유격수가 3루수로의 이적을 결심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로드리게스의 이적 이후 텍사스의 새 유격수가 됐던 마이클 영이었다.

5번의 올스타 선발, 그리고 바로 지난해 유격수 부문 골드 글러브 수상으로 리그에서 가장 수비력이 좋은 선수로 인정받았던 그가 팀으로부터 다른 포지션으로 떠나줄 것을 통보받은 건 놀라운 사건이었다.

유격수가 원래 주 포지션이었지만 당시에는 에이로드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2루수로 빅리그 생활을 시작 했던 그는 에이로드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고 그 대신 올스타 2루수 알폰조 소리아노가 들어옴에 따라 유격수로 원위치 하게 됐다.

어쩌면 자연스런 이동으로 보일 수 있었던 그 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 다르다. 텍사스가 영 대신 유격수 자리로 넣으려는 선수는 고작 20살의 엘비스 엔드류스다.

영은 즉각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과거의 젊은 시절 그 보다 훨씬 네임벨류가 있었던 선수로 인한 포지션 변경이야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이건 경우가 완전 달랐다.

재작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마크 텍셰이라를 애틀랜타로 내보내며 받아온, 아직 빅리그에는 등장도 하지 않은 슈퍼루키에게 자기 자리를 내놔야 한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유격수인데..

내야수들의 유격수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1루수, 2루수, 3루수 등 베이스 숫자가 들어가는 다른 내야수와는 달리 유격수는 Shortstop으로 그 이름마저 각별하다.

코너 내야수와 외야수, 심지어 포수마저 공격형 포수가 있을 정도로 공격력의 비중이 커다랗지만, ‘공격형 유격수’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멘도사 라인의 부끄러운 타율로도 빼어난 수비력만 있다면 고개를 들 수 있는 곳이 바로 유격수이다.

하지만 트레이드 요청 발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영은 3루 이동을 받아들였다. 2007년 봄 5년 간 8,000만 달러의 거액 계약을 맺었던 게 트레이드하기에 쉽지 않은 장애물로 나타났고, 여기에 놀란 라이언 사장과의 면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유격수란 포지션의 자존심과 9년 전 빅리그 데뷔를 이루었던 팀과의 의리 사이에서 그는 소속팀의 승리를 위해 의리를 택한 셈이었다.

유격수로 가장 많은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던 아지 스미스(13회)는 은퇴할 때까지 유격수로만 활약했다. 그 다음 순위로 11차례 선정됐던 오마 비스켈 역시 마찬가지이다.

투수가 끝까지 선발로 활약하길 원하고, 타자가 영원한 4번 타자로 남길 바라듯 내야수들의 유격수 욕심도 거의 예외가 없을 일이다.

위대한 수비수는 뛰어난 공격수만큼이나 커다란 인정을 받기에 선수들은 자기 능력이 더 이상 유격수의 수비범위를 커버하기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 한 자리를 내놓지 않으려 한다.

철인 칼 립켄 주니어처럼 연속 출장을 이어가던 시기에 유격수에서 3루수로 전향해 체력저하도 줄이고 연속 출장도 이어간 윈-윈 케이스도 있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3루수는 공격력, 특히 장타력이 뒷받침 돼야만 주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포지션이기에 짧은 안타에 수비력으로 인정받던 유격수가 3루로 전향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단지 수비위치가 전보다 우측으로 40피트 벗어나는 걸로 끝날 평범한 문제가 아니다.

마이클 영의 포지션 이동이 팀의 전력도 상승시키고, 자신의 능력도 돋보이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로 나타날지 관심이 모아진다.

-엠엘비파크 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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