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팀들이 올 시즌 캐치프레이즈를 속속 발표하고 있습니다. 모든 걸 다 잘하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아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한번 이뤄보자고 내거는 게 캐치프레이즈가 아닌가 싶습니다.
삼성은 ‘믿음과 열정! 푸른 사자들의 신화는 다시 시작된다! 2009 V5’로 결정했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치려는데 ‘믿음’이라는 단어가 도드라져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창단 이후 삼성의 캐치프레이즈를 훑어봤습니다.
우승, 화끈, 돌풍, 열정, 신화가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하고 근성, 최강, 호쾌 같은 단어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 ‘믿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삼성의 캐치프레이즈에 믿음이란 단어가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캐치프레이즈 선정 방식을 구단에 물어봤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공모했더니 900여 개의 응모작이 나왔고, 구단이 이 중 10개를 골라 팬 투표에 부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믿음…’이 20%가량의 지지를 받아 1위를 했고 이어 ‘명가의 본능, 승리의 라이온즈’가 2위였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투표가 이뤄져 팬들이 무슨 이유로 ‘믿음…’에 가장 많은 표를 던졌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명가의 본능이나 승리보다는 믿음과 열정을 보여 달라는 팬이 더 많았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뭔가를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잘해라, 잘해”라는 말을 해대는 경우는 드뭅니다. 뭔가 기대에 못 미쳤거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을 때 “잘 좀 하라”는 요구가 있게 마련입니다.
삼성의 캐치프레이즈에 등장한 믿음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히어로즈 장원삼 선수의 현금 트레이드나 소속 선수의 인터넷 도박 문제가 정리되긴 했습니다만 ‘더는 실망시키지 말고 잘 좀 해 달라’는 팬들의 주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삼성은 “최고의 명문 팀으로 도약하려는 구단의 의지가 담긴 표현”이라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