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쳐 놓은 사업이 많은데 이렇게 떠나시면 무책임한 것 아닌지요.” “재출마를 선언하시죠.”
4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이사회장에서는 읍소가 이어졌다.
이연택(73) 대한체육회장은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여러분의 의견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체육 선진화의 밑그림을 마련했으니 후임 회장에게 길을 열어주겠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중도 사퇴한 김정길 전 회장의 잔여 임기 9개월을 마치면 퇴임한다는 ‘약속’을 지켰다.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한 이 회장을 12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그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홀가분한 느낌”이라며 체육계 수장을 맡았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 정부와의 갈등, 그리고 화해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분리를 추진했다. 대한체육회는 “체육 단체를 통합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결국 문화부는 이를 없던 일로 했다.
이 회장은 “문화부와 일부 견해차가 있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체육계 통합을 결정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체육 선진화를 위해 정부와 체육계가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다.
“정부는 재정 보조금을 준다는 이유로 체육계를 관리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기업체가 체육단체에 기부금을 내면 세금을 전액 감면해 주는 등의 지원 체계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체육인 역시 정치인을 앞세워 예산을 더 받겠다는 구태의연한 발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수익사업을 개발하는 등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 차기 체육회장 선거에는 중립
이 회장은 제37대 대한체육회장에 출마한 후보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 체육회장 선거 결선에서 총 53표 가운데 33표를 얻은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차기 회장은 순수하게 대의원들의 지지로 선출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몇몇 후보는 사무실로 찾아와 악수를 하거나 통화만 하고도 ‘지지를 약속 받았다’고 하더군요. 공정한 선거를 위해 중립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 체육계 30년의 추억
행정관료 출신인 이 회장은 1979년 총리실에 근무하며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다.
총리실 산하 체육정책조정위원회에서 1986년 아시아경기와 1988년 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하는 데 실무 역할을 맡았다.
“당시 아시아경기는 평양, 올림픽은 일본이 유력한 상황이었지만 모두 서울 유치를 성공시켰죠. 북한과의 체제 경쟁과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넘어섰기에 의미가 깊었습니다.”
이 회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면서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이뤘고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종합 7위에 오르면서 일본(8위)을 누른 게 가슴 뿌듯한 추억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체육회를 떠나면 강단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모교인 동국대 석좌교수로 정부조직론과 행정개혁론을 가르칠 계획이다.
그는 스스로를 ‘영원한 스포츠맨’이라고 했다. 평생 봉사하는 마음으로 체육계에 남겠다고 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은
△1936년 전북 고창 출생 △전주고, 동국대 법학과 졸업, 단국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 △주요 경력: 1981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차장, 1990년 총무처 장관, 1998년 국민체육공단 이사장, 2002년 한일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2002년 제34대 대한체육회장 △현 제36대 대한체육회장, 동아마라톤 꿈나무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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