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LPGA루키 최운정 “LPGA 컷 탈락 나에겐 약 됐어요”

  • 입력 2009년 2월 19일 08시 19분


12월 8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 최종 예선이 열린 플로리다주 데이토나비치 LPGA인터내셔널 골프장.

최운정(19)은 최종 성적 4언더파 356타로 커트라인에 1타가 모자라 짐을 쌌다. 퀄리파잉스쿨에서 20위 이내에 들어야 내년도 풀 시드권이 주어지는데 최운정은 공동 21위로 경기를 끝냈다.

최운정과 부친 최지연 씨는 내년을 기약하며 골프장을 떠났다. 자동차로 40여 분을 달려 집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LPGA 투어 사무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플레이오프에 출전해야 할지 모르니 준비를 해달라는 전화였다.

뜻밖이었다.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길로 차를 돌려 골프장까지 15분 만에 도착했다.

“타이어에서 타는 냄새가 날 정도였으니 좀 밟았죠.” 최지연 씨의 말이다. 20위 이내에 들었던 선수 가운데 2명이 시드권을 반납하면서 생각지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공동 21위에 있던 4명의 선수가 플레이오프를 했다. 3개 홀에서 벌어진 플레이오프에서 최운정은 2언더파를 쳐 첫 번째 합격자가 됐다.

나머지 한 장의 티켓은 지니 조-허니크가 차지했다. 막차를 타고 LPGA 입성에 성공한 최운정은 12일 하와이 터틀베이골프장에서 열린 SBS오픈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결과는 컷 탈락. 낯선 무대,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실망스런 성적표를 받아들다. 하지만 최운정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좋은 경험이었어요”라며 밝게 웃었다.

▲국가대표 상비군 지낸 유망주

세화여고 2학년 때까지 국내 주니어 무대에서 활약했던 최운정은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지냈다. 한국주니어선수권 등에서 우승할 정도로 유망주였다. 그때 함께 뛰었던 선수가 작년 KLPGA 신인왕 최혜용(19·LIG)과 유소연(19·하이마트)이다. 그러나 최운정에게 주니어 시절은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동료들을 보면 부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택시로 갈아타면서 대회장에 갔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부모님 모두 일을 하셨기 때문에 함께 대회장에 오실만한 여유가 없었죠. 그런데 동료들을 보면 항상 부모님과 함께 다니는 모습이 부러웠어요. 더군다나 대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더욱 서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부친 최지연 씨는 20년 넘게 경찰관으로 근무했고, 어머니 이원경 씨도 일을 했기 때문에 좀처럼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연습 여건이 너무 좋지 않았어요. 100야드가 조금 넘는 연습장에서 훈련하는 내 자신이 처량해 보일 때도 있었죠. 이러다가는 제대로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그저 그런 선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빠에게 미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죠.” 딸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가슴이 뭉클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뒷바라지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주니어 시합을 다녀보면 부모들이 시합을 못하는 아이에게 꾸짖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부모로서 도움이 부족했기 때문에 오히려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왕이면 좋은 환경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조금 빨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퓨처스투어를 거쳐 LPGA 입성

미국으로 건너온 최운정은 빠르게 성장했다. 워낙 열정이 컸기에 새벽부터 밤까지 매일 골프에 매달렸다.

지난해 퓨처스투어를 뛰면서 경험을 쌓은 최운정은 퀄리파잉스쿨에 도전장을 냈다. 첫 예선에서 쓴 고배를 마셨다. 36위로 탈락하고 만 것이다. 30위까지 주어지는 최종예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떨어지고 나서 ‘이게 진짜 내 실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습도 부족했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 실패의 원인이었죠.” 마음을 다 잡은 최운정은 두 번째 지역예선에 도전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내년에도 퓨처스투어를 뛰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독하게 먹었죠.”

첫 도전을 실패했지만 두 번째 도전에서 최운정은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고 최종예선의 티켓을 거머쥐었다.

마지막 관문은 만만치 않았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모두 출전해 단 20명의 선수에게만 내년도 풀 시드권이 주어진다.

“합격할 것이라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냉정하게 생각할 때 제 실력이 LPGA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에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 운이 따랐던 것 같아요.”

운이라고 말하지만 실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언니가 생겼어요”

SBS오픈에서 데뷔전을 치른 최운정은 컷 탈락해 일찍 짐을 쌌다.

그러나 소중한 경험과 함께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이전까지 바람이 많이 부는 코스에서 대회를 했던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미리 대비하기는 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어요. 코스 공략부터 게임을 풀어가는 요령 등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혼자 유학생활을 하면서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LPGA 투어에 진출하면서 언니도 생겼다. “루키 오리엔테이션에서 미셸 위 언니를 만났는데 그때는 제가 ‘언니’라고 부르는 걸 조금 부담스러워했어요. 그런데 이번 대회 연습 라운드 때는 ‘언니’라고 부르니 너무 좋아했어요. 물론 다른 선배들도 많이 예뻐해 주세요.”

워낙 낙천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인 덕에 대회에 나가도 긴장하거나 낯선 느낌을 많이 받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SBS오픈은 LPGA 진출 후 첫 대회라는 점에서 부담되고 긴장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선배들과 함께 지내면서 한결 편해진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게 낯설었어요. 무엇보다 TV로만 보던 스타들과 함께 연습라운드도 하고 플레이하고 있는 내 자신이 마냥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어느덧 이런 위치에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거든요.” 그 자리에 함께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최운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스타가 되고 있었다.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요”

최운정은 소원을 풀었다. 다른 선수들처럼 아빠와 함께 투어를 뛸 수 있게 됐다. 딸이 LPGA 투어에 입성하면서 아버지가 함께 지내기로 한 것이다.

“작년부터 아빠와 함께 퓨처스투어에 뛰었어요. 휴직을 하셨는데 지난해 6월 퇴직을 하시면서 이제는 계속해서 아빠와 함께 투어에 뛸 수 있게 됐죠.” 최운정의 얼굴에선 미소가 번졌다. 아빠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게 무척이나 뿌듯한 모양이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으면 마냥 기뻐할 일도 아니다. 최지연 씨가 퇴직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 딸의 투어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LPGA 투어를 참가하기 위해선 최소 15~20만 달러의 경비가 든다.

그런데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으로는 그 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퇴직금이라도 받아서 딸의 뒷바라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아빠로서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최지연 씨는 강남, 혜화경찰서 등에서 22년간 경찰관으로 근무했다. 부녀간의 정은 특별해 보였다. 최운정은 아빠에 대한 사랑이 그리웠는지 “아빠가 곁에 있어 너무 든든하다”며 자랑했다.

소원도 풀었으니 이제는 LPGA 투어에서 성공하는 일만 남았다. 루키 최운정의 소망은 소박하다. 몇 승에, 신인왕에 도전하겠다는 거창한 꿈은 비현실적이라며 겸손했다.

“제 실력으로 우승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아요. 올해는 상금랭킹 30위에 드는 게 목표에요.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내서 내년 즈음 우승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일순간 스타의 자리에 오르기보다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게 ‘루키’ 최운정의 바람이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사진=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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