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는 3루에서 펑고를 받습니다. WBC에서 여차하면 3루수로 나서야 합니다. 학창시절 친구였던 추신수의 소속팀(클리블랜드)이 희한한 조건을 내걸어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팀에서도 3루를 보니까 못 할 건 없어요. 하지만 WBC에서는 실책 하나로 온 국민을 실망시킬 수 있잖아요. 너무 부담이 커요. 피하고 싶죠.” 스스로도 잘 압니다. “제 이름 이니셜이 DH 아닙니까. 저는 여기 DH(지명타자)로 왔다니까요.” 짐짓 농담도 해봅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그렇다고 이대호를 뺀 타선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2006시즌 타격·홈런·타점 1위를 싹쓸이했던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타자입니다. 부산이 자랑하는 롯데의 4번타자이기도 합니다.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빛났습니다. 금메달의 영광을 완성한 건 이승엽(요미우리)이지만, 착실한 한 방으로 한국을 준결승까지 이끌어놓은 건 이대호였습니다. 김인식 감독도 그래서 고민합니다. “대호를 그냥 벤치에 앉히기엔 너무 아깝잖아.”
게다가 이번엔 책임감이 더 큽니다. 영원히 해결사 노릇을 해줄 것 같았던 이승엽과 김동주(두산)가 없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아무리 툴툴거려도 사실은 그의 각오가 꽤 진지하다는 걸 모두가 압니다. 류 코치도 그랬습니다. “대호는 청개구리 같지만 결국은 주문한 대로 다 해내거든요. 그래서 좋은 선수죠.” 이대호도 웃어버립니다. “감독님이 하라시면 해야지요. 나라를 위해 뛰는 거 아닙니까.”
ESPN은 3년 전 WBC 미국전에서 한국이 승리한 뒤 기사의 첫 머리에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이번엔 이대호가 ‘또다른 이승엽’이 돼 세계를 놀라게 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준비, 무척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하와이|배영은 기자 yeb@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