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일엔 얼굴 한 번 찡그리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좋은 편입니다. “어차피 화내봤자 상황이 달라질 게 없는데, 그럴 바엔 한번 허허 웃고 잊어버리는 게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랍니다. 그런데 승부욕은 또 엄청납니다. 이번 WBC를 벼르고 있는 이유도 지난해의 아픔 때문입니다. 한국시리즈 우승팀 선수 자격으로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했지만 대만에 대패했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심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 때 깨달은 게 많아요. 이번엔 꼭 그 때의 설욕을 해줘야죠.”
사실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는 얼굴이 어두웠습니다. SK 캠프에서 펑고를 받다가 오른손 검지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거든요. 그래서 타격 훈련을 하나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웬 걸. 연습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방망이가 춤을 춥니다. 최근 타격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이대호는 정근우의 타구를 볼 때마다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이순철 타격코치는 “친구 대호한테 방망이 좀 가르쳐주라”며 짐짓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정근우는 지난해 말 왼팔에 문신을 하나 새겼습니다. 아내 홍은숙 씨와 이제 태어난지 1년이 된 아들 재훈 군의 이름입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 늘 열심히 야구하겠다는 각오”랍니다. 개구쟁이 같은 외모 뒤에 가장으로서의 묵직한 책임감을 품고 있는 겁니다. 그의 작은 몸속에 또 어떤 힘이 숨겨져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하와이|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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