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우 (38·삼성·사진) 배터리 코치가 내뱉은 첫 마디였습니다. 지난해 말 갑자기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 말입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태극마크를 달아달라는 요청. 몇 번을 진짜냐고 되물었습니다. “내가 무슨 국가대표입니까. 훌륭한 선배들이 얼마나 많이 계신데.” 하지만 사실이더랍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기분요? 아이고, 아마 내가 선수들보다 더 좋아했을 걸요.” 그는 그렇게 20년 만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습니다.
마지막 태극마크를 이야기하려면, 199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야구가 첫 정식종목으로 도입됐던 바르셀로나올림픽 아시아예선입니다. 그 때 대만전 배터리를 이뤘던 투수가 바로 구대성(한화). 하지만 5-4로 앞섰던 6회 석연찮은 판정 때문에 끝날 이닝이 계속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뻥. 역전 3점포를 얻어맞았습니다. 강 코치는 이듬해 프로에 입단했지만 그 이후 한번도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아련해집니다. 포수 1000경기 출장에 불과 48경기만을 남겨두고 선수생활을 마쳐야 했던 그입니다. “코치 말고 선수로 저기서 뛰어보고 싶은 생각, 왜 없겠어요.” 며칠 전에는 박경완(SK)이 강 코치의 유니폼을 입고 연습경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경완이가 유니폼을 안 가져와서 빌려준 거죠. 그런데 거기 내 것 입고 앉아있는 것만 봐도 뿌듯하데요.” 그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꿈을 이뤘으니 그는 마냥 좋답니다. “태극마크까지 달았는데 뭔들 못하겠어요”라며 껄껄 웃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딸 소휘(10)와 서진(8)양에게 ‘국가대표 아빠’로 어깨를 으쓱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는 “아내가 여자농구 국가대표 출신(이강희씨)인데, 다행히 엄마 닮아 딸들은 키가 크다”며 자랑스럽게 웃습니다. 안 그래도 ‘동안’인 강 코치의 얼굴이 더 젊어 보입니다.
하와이|배영은 기자 yeb@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