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가 이런 근성도 없으면 쓰겠느냐’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수가 ‘이치로(사진)’란 점이 걸립니다. 마치 보름달이 뜨면 이리로 변하는 늑대인간처럼 WBC만 돌아오면 이치로의 본색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입니다.
미국인들은 ‘이치로는 선(禪)의 경지에 이른 사람 같다’고 평합니다. 냉정하고(조지 시슬러의 빅리그 단일시즌 최다안타기록을 깰 때조차) 근면하며(시애틀 동료는 “그의 훈련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친다”고 했죠), 돈(시애틀 입단 당시 평균 연봉은 400만달러에 불과했죠)과 평판(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국민영예상을 사양했죠)에도 초연합니다. 로버트 화이팅의 명저 ‘세계야구혁명’을 인용하면 ‘노력-근성-인내-융화란 무사도와 닮은’ 교육을 아버지-이치로가 세 살 때부터 야구를 가르쳤다. 그가 고교 감독에게 아들을 맡기며 당부한 말은 “아들을 절대 칭찬해주지 말라”였다-에게 받은 영향입니다.
이렇게 일본식으로 훈육된 이치로의 끝없는 노력과 천재성이 이룬 업적(숫자)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듭니다. 마치 일본경제의 성장처럼요. 그러나 이치로와 일본이 이에 걸맞는 존경을 못 받는 점까지 닮은 꼴입니다.
우월주의(나르시즘)에 빠져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시애틀 동료는 나처럼 훈련하지 않는가?’, ‘왜 한국은 일본이 아시아야구의 지존이라고 굴종하지 않는가?’…. 속이 끓어도 미국에선 참아야 되지만 일장기를 달면 폭주하는 감정을 제어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베이스볼이 아닌 야큐(野球)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서가 아닐까요. 그의 야구에 비장감과 살의는 넘쳐도 재미와 여유는 안 보입니다. 서구는 이치로를 일본의 개성, 도전정신, 혁신의 아이콘처럼 여기지만 실상은 일본의 국가주의, 폐쇄성, 사무라이의 가치관을 지닌 존재에 가까운 것 아닐까요.
일본 국민과 매스컴의 이치로 열광은 어찌 보면 거품경제 붕괴 후 자신감을 잃어버린 일본의 불안감의 반영일지도 모릅니다. 전후 역도산을 통해 얻었던 위안을 21세기 이치로에 의해 다시 받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건강한 현상일까요. 결국 1853년 흑선(구로부네·일본의 쇄국정책 당시 출현했던 서양선박) 출현 이후 일본은 변하지 않았다는 암울한 증거 아닐까요.
gatzby@donga.com
[화보]김태균 ‘결승 투런’ 한국 대표팀 세이부전 승리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