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적인 1차전 2-14, 7회 콜드게임 패배로 인해 국내 야구팬들은 적잖이 당황했고, 리턴매치를 앞두고 전망 또한 부정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은 이틀 만에 다시 사무라이들을 맞아 매운 고추 맛을 단단히 보여줬다.
미처 예상치도 못한 대승을 거둔 하라 다쓰노리 감독을 비롯한 일본대표팀과 언론이 잔뜩 고무된 표정을 지으면서도 왜 한편으로는 한국야구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았는지를 우리 스스로 입증한 재대결이었다. 피 말리는 투수전 끝에 거둔 1-0 승리는 향후 2라운드에서 한국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고, 반대로 일본에는 더욱 혼란을 부추길 수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의표 찌른 ‘선발 봉중근’ 카드
한국의 1차전 선발 김광현은 일본의 ‘현미경 분석 야구’에 철저히 간파당해 1.1이닝 동안 7안타 2볼넷으로 무려 8실점하고 쓸쓸히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러나 2차전 선발 봉중근은 5.1이닝 동안 19타자를 맞아 볼넷 하나 없이 3안타 2삼진 무실점으로 역투,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선발이 무너지면 대책이 없는 게 야구다. 1차전과 달리 선발싸움에서 오히려 앞선 결과 2차전은 한국의 페이스로 전개될 수 있었다.
김광현은 대표팀 소집 단계부터 일본전 선발로 내정됐다. 베이징올림픽에서 2차례나 김광현에게 당한 일본도 수개월 전부터 대비했고 7일 일본 타자들은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난타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2차전 한국이 꺼내든 선발 카드는 의외였다. 6일 대만전에 선발등판해 43구만 던진 또 다른 좌완 에이스 류현진이 설욕전 선발투수로 예상됐다. 하라 감독이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이는 일본 타자들의 대응자세에서도 드러났다. 김광현을 상대로 슬라이더라면 초구든, 2구째든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냈지만 봉중근을 상대하면서는 쫓아다니느라 급급한 모습이었다.
○대패가 보약?
재대결을 앞두고 한국 선수들의 표정에서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말을 붙이기 곤란할 만큼이었다. 물론 일본도 홈에서 다시 한번 한국을 꺾어 실추된 자존심을 확실히 되살리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 선수들의 투지가 일본을 앞섰다. 봉중근에 이어 구원등판한 정현욱도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볼을 안정된 제구를 바탕으로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으로 꽂아넣었다. 국내에서 한창 시즌 중에도 이처럼 늠름하고 침착하게 볼을 뿌린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허벅지 통증 때문에 등판이 불투명했던 류현진도 8회 좌타자 스페셜리스트로 마운드에 오르는 투혼을 불살랐다. 마무리 임창용이 마운드에서 내뿜은 무시무시한 기세도 빼놓을 수 없다. 태극전사들은 참패로 인해 주눅이 들기보다는 타석에 바짝 달라붙어 제 스윙을 하고, 1회말 이종욱처럼 수비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근성을 발휘하며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다.
도쿄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화보]완벽한 설욕전! 한국 VS 일본 조 1위 결정전 경기 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