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인터뷰라 자리를 잡고 평소처럼 농담을 섞어 취재진을 즐겁게 해주곤 했지만 중간중간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말을 하는 사이 그의 콧물이 인중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주사라도 한방 맞으면 좋을 것 같은데, 미국은 병원에 가도 주사를 잘 놔주지 않으니….” 힘없는 코맹맹이 소리, 콧물을 훔치는 그의 불편한 오른손이 애처롭게 보입니다. 그 오른손은 2004년 말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절뚝거리는 다리와 함께 아직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행기 양쪽에서 찬바람이 많이 나오더라고. 제대로 감기에 걸렸나봐.” 9일 일본과의 격전을 치른 뒤 곧바로 밤에 전세기를 타고 미국까지 날아오면서 얻은 감기입니다.
그러나 김성한 수석코치는 다른 해석을 내렸습니다. “감독님이 일본에 콜드게임을 당한 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수들을 모아놓고 0-1로 지나, 0-10으로 지나 1패라고 짧게 말씀하셨지만 그 속이 오죽했겠느냐. 콜드게임 면하자고 투수를 다 투입할 수도 없고. 9일 일본전 이긴 뒤에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감기가 온 모양이다.”
김 감독은 전세기를 타고 오면서 와인 한잔만 마시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답니다. 경기 후 “배가 고프다”고 말했던 김 감독이지만 승무원에게 식사를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사이 잠들고 말았습니다.
김성한 코치에 따르면 9일 일본전에서 1-0 승리가 확정된 뒤 김 감독은 그 자리에서 울었답니다. 코치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포옹을 하는 순간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답니다. 김 코치가 자신의 눈물을 눈치채자 민망했는지 “성한아, 내가 우는데 수석코치는 왜 안 울어?”라고 큰소리를 치더랍니다. 그러면서 서로 가슴이 터지도록 뜨겁게 껴안았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 콜드게임패가 얼마나 분하게 자리잡았는지, 설욕의 기쁨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이 되더군요.
잘하면 영웅이지만 못하면 역적이 되는 대표팀 감독 자리. 모두들 ‘독이 든 성배’라며 거절했지만 자신 한몸과의 싸움도 힘겨운 ‘국민감독’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전쟁터에 나섰습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진 채 칼끝에 선 김인식 감독. 그의 콧물과 눈물을 보면서 한국야구는, 아니 대한민국은 참 많은 짐을 그에게 맡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피닉스(미 애리조나주)|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