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이 12일(한국시간) 애리조나의 피오리아 스포츠콤플렉스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평가전에서 4-10으로 대패했다. 내보낸 투수들이 줄줄이 무너지자 김인식 감독은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돌부처’ 오승환을 수확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오승환은 0-9로 뒤진 7회말에 등판해 2이닝 동안 8타자를 상대해 탈삼진 3개를 곁들여 2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기록상으로는 2안타와 1실점이 걸리지만 내용적으로 놓고 보면 2라운드에 필승 방정식의 한 축으로 가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하는 호투였다. 채드 허프먼에게 허용한 2루타는 유일하게 정타를 맞았지만 윌 베너블의 좌전안타는 빗맞은 타구였다. 나머지 타자는 모두 공에 배트가 밀리거나 허공을 갈랐다. 그만큼 공끝에 힘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김인식 감독도 당장 이날 경기 후 “오승환은 대표팀 합류 후 가장 좋은 공을 던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오승환은 도쿄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 손민한과 함께 등판하지 않았다. 그래서 컨디션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물론 양상문 투수코치도 “손민한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등판이 불발된 게 맞지만 오승환은 등판시키려고 했지만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9일 일본과의 A조 1위 결정전에 불펜에서 계속 몸을 풀었다는 설명이다.
이날 경기에서 거의 모든 선수가 시차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며 무기력한 경기내용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오승환이 공끝이 묵직한 구위를 선보이자 대표팀으로서도 필승 불펜 카드 하나를 건져 올렸다는 생각에 마운드 구성에 한층 자신감을 갖게 됐다.
오승환은 겨울 동안 지독한 감량 작전을 펼친 끝에 몸무게를 10kg이나 줄였다. 현재 88kg이다. 고기와 밥을 배제한 채 채식 위주로 몸을 만들어 전지훈련 초반에는 힘이 떨어졌지만 최근 육류와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구위도 올라오고 있다는 자체 평가다.
오승환은 3년 전 WBC에서도 2라운드부터 진가를 드러냈다. 1라운드에서는 박찬호가 마무리투수를 맡으면서 그는 중국전 1경기에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1라운드에서 그의 구위를 확인한 대표팀 김인식 감독은 박찬호를 2라운드 첫경기 멕시코전에서만 마무리를 맡긴 뒤 선발로 돌렸고, 오승환을 마무리로 발탁했다.
오승환은 미국전과 일본전에서 세계가 놀랄 정도로 무서운 공끝을 자랑했다. 당시 최고구속은 140km 중반이었지만 미국 포수 마이클 배럿은 그의 공을 본 뒤 “마치 시속 110마일(177km)을 던지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번 WBC 2라운드에 그에게 어떤 중책이 맡겨질지, 또 어떤 투구를 선보일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대표팀으로서는 이날 오승환의 어깨에 믿음을 얻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피닉스(미 애리조나주)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