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리더십’ 탐구는 ‘WBC 4강은 김인식이어서 가능했다’란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스포츠동아는 ‘왜 이겼는가’를 넘어 김인식 리더십이 던지는 메시지를 읽어보려 한다.
거기에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정신’의 단서가 숨어있다고 감히 확신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을 칭송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김 감독의 전술 운용은 어지간한 팬이면 짐작할 수 있는 수순을 밟는다. 파격으로 따지면 베이징올림픽이 더했다.
김인식 감독의 야구는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일본이 김광현을 대비하고 있는데도 선발로 올렸다.
봉중근이 일본을 잡으니까 또 올렸다. 라인업 구성이나 투수 교체 타이밍도 기상천외와는 거리가 멀다.
요체는 김인식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이 똑같은 작전을 폈어도 성공했느냐다. 이 지점에서 김 감독은 특별해진다.
김인식 리더십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믿음의 야구도, 관리 야구도 아니다.
김인식 야구는 비어(空)있다. 어떤 틀(철칙)에 구애받지 않는다. 한국식, 미국식, 일본식을 두루 포용한다.
장(場)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경기 운용은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는 쪽이 아니라 대응하는 쪽’이란 겸손함이 깔려 있다.
김인식 리더십의 본질은 ‘무위(無爲)의 치(治)’에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힘이다. 리더십의 공백이 발생한 만큼 폴로우십(followship·추종력)이 대체한다.
김인식 리더십의 권위는 자발적 폴로우십을 끌어내는 힘에 있다. 폴로우십의 원천은 순전히 김 감독의 인간적 매력이다.
김 감독은 ‘내 야구만 옳다’, ‘나 아니면 안 된다’가 아니다. 이념의 경계가 없으니 편을 가르고, 논쟁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김 감독은 논리가 아니라 감화에 집중한다.
잭 웰치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 먼저, 그 다음이 전략(People first, strategy next)”이다.
WBC 선수 선발 과정을 보라. 백차승, 박찬호, 이승엽, 김동주, 김병현, 박진만…. 기둥뿌리가 뽑혀나가도 김 감독은 쓴소리 한번 안했다.
“감독에게 감독의 최선이 있듯 그 선수들에겐 그들 나름의 최선이 있다”는 이해가 깔려있어서다. 대표팀의 WBC 4강은 역대 최강멤버여서가 아니었다.
‘자발적 폴로우십’의 선수들로 팀을 짜서 가능했다. 김 감독의 작전능력은 그 다음이다. 경영학 명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나오는 대목이다.
“위대한 기업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외부사람 눈에 극적으로 보이는 전환도 실은 내부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가 겉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위대한 기업에 기적의 순간이란 없다. 장래 최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다음, 플라이휠을 한바퀴, 한바퀴 차분하게 돌려나간다.”
여기서 ‘기업’은 곧 ‘김인식 리더십’으로 대체가능하다. 당연히 좋은 감독을 넘어 위대한 감독이다.
김영준기자 gatzby@donga.com
[화보]영원한 맞수! 2009 WBC 한일전 명장면을 한눈에
[관련기사]김인식의 ‘배려’ … “격려금 배분때 훈련 보조요원 챙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