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는 아쉽게 결승 연장전에서 일본에 패했지만 빙판에서는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한국인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쳤다. 금메달 시상식 때 애국가가 스테이플스센터에 울려퍼지자 김연아도 울었고 많은 한인 동포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선수들이 올림픽이나 세계대회 시상대에서 왜 우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실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가 나오니 저절로 눈물이 나오더라”고 한 어떤 야구선수의 말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이민 와 있는 동포들에게는 더 눈물샘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6일 간격으로 한국의 자랑스러운 야구대표팀과 김연아는 동포들에게 너무나 큰 선물을 안겨줬다. 한국인의 자긍심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선수들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자부심을 정체성이 모호한 이민 2세대들에게 강하게 심어준 것이다.
사실 이곳에서 태어나고, 갓난 아이 때 건너온 이민 2세대들은 한국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이다. 가끔 보는 한국 뉴스는 난장판 정치에 부정부패 등으로 얼룩져 있어 조국을 후진국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에 진출했을 때 이민 2세대들은 코리아가 자랑스러웠다. 이번 WBC에서도 한국 야구의 저력에 수만명의 동포들은 다저스타디움을 찾아 “대∼한민국”을 외쳤다. 피겨 종목이 한국인의 어깨를 으쓱이게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미국에서 피겨선수하면 으레 미셸 콴을 생각했고, 크리스티 야마구치 등 일본계 미국인들이 득세하는 종목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연아가 이틀간 보여준 연기는 환상 그 자체였고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LA 인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100만명 가까이 된다는 통계가 있지만 한인 행사에 1만명이 동원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스포츠의 힘은 다르다.
WBC 한국야구대표팀과 김연아는 한인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LA 한인라디오 방송에 한 청취자는 “그대들이 있음에 우리는 너무 즐거웠다”고 감사했다.
LA|문상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