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봉중근 “의사 별명 제겐 엄청난 영광이죠”

  • 입력 2009년 4월 2일 02시 57분


■ WBC서 새 일본킬러로 뜬 투수 봉중근

팬들 응원이 최고의 힘

日과 맞붙어 투지도 생겼고…

이제는 LG 구할 차례

가을잔치 꼭 참석하고 싶어

“솔직히 제가 그렇게 많이 던질 줄 몰랐어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은 지난달 7일 도쿄돔에서 일본에 2-14로 졌다. 충격이었다. ‘일본 킬러’로 불리던 김광현(SK)은 2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8점을 내줬다. 봉중근(LG)은 이틀 뒤 일본과의 아시아 라운드 순위 결정전 등판을 자원했다. 그리고 스즈키 이치로(시애틀)를 3타석 연속 내야 땅볼로 돌려 세우며 짜릿한 1-0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미국에서 열린 본선 라운드에서도 일본을 꺾은 선발 투수는 봉중근이었다.

위기의 순간 한국을 구한 그에게 팬들은 안중근 의사와 이름까지 같다며 ‘의사(義士)’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대표팀 유니폼을 벗고 LG로 돌아온 봉중근을 만났다.

“의사라고 불러 주시니 영광이죠. 하지만 엄청난 수식어라 부담도 돼요. 제 영문 이니셜이 J.K.B인데 관중석에 ‘Japan Killer Bong’이라는 푯말이 보이더라고요. ‘일본 킬러’라는 별명이 더 편하긴 하네요.”

9일 일본전 등판을 앞두고 봉중근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한동안 더그아웃에 앉아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이 사뭇 비장한 느낌마저 줬다. 무엇을 듣고 있었을까.

“아, 그때요? 강산에와 윤도현의 노래를 들었어요. 바비 킴 노래도 있었고요.”

해외 언론은 한국처럼 강한 팀에 메이저리거가 추신수(클리블랜드) 1명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봉중근 역시 빅리거 출신이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일단 영어가 되잖아요.(웃음) 국내에서 인정받은 선수라면 한번쯤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봉중근은 신일고 1, 2학년 때 모교의 황금사자기 2연패에 앞장섰다. 제63회 황금사자기는 2일 결승전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무엇보다 몸을 아끼지 않는 승부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야구장에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어야 돼요.”

후배들을 향한 조언이라고 했지만 마치 자신의 얘기 같았다. 봉중근은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한국이 연장 접전 끝에 패하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번 대회에서 봉중근의 직구는 시속 151km를 찍었다. 2004년 어깨 수술을 받은 뒤로 처음이었다.

“야구장을 꽉 채운 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어요. 일본과의 경기라 투지도 생겼고요.”

2007년 아들 하준을 얻은 그는 조만간 1남 1녀(예정)의 아빠가 된다. “하준이가 벌써부터 야구공을 좋아해요. 저처럼 투수가 됐으면 좋겠는데….” 가족 얘기가 나오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봉중근은 요즘 LG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좋다고 했다. 타선도 든든해 이번에는 정말 가을 잔치에 나갈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6, 6, 6, 8, 5, 8(위). LG는 최근 6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절박한 상황이다. WBC에서 한국을 구한 봉중근이 이제 LG를 구할 차례다.

“15승 이상 올리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하고 싶어요. 더 욕심나는 것은 선발 투수인 만큼 최다 이닝을 던지는 거고요.”

올 시즌 LG가 신바람을 내고, 그 덕분에 잠실구장이 팬들로 가득 차면 국내에서도 ‘봉중근의 150km 직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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