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돈과 명예는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필경 돈이라는 게 선수 매니저로서 나의 경험이다. 어찌 보면 국가대표라는 타이틀도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기위한 명함 내지는 최상급 선수라는 귀표(earmark)가 아닐까.
‘돈’이라면 이제 중동축구에 시선을 돌릴 때가 됐다. 그게 오늘 얘기의 골자다. 지금 사우디 알 힐랄에서 뛰고 있는 설기현을 올 초 잉글랜드 풀럼에서 임대 보내면서, 그리고 한동안 그곳 중동의 축구인, 축구클럽, 축구팬들과 부대끼면서 느낀 것이기에 ‘설마’하는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겠다.
오늘의 주제와 부합하는 중동축구라면 카타르, 사우디, 그리고 UAE다. 돈으로 치자면 카타르-사우디-UAE 순이다. 선수들이 받는 급여를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그들 리그에도 부자 구단과 가난한 구단이 존재한다.
하지만 K리그보다 역동성이 느껴지는 건 1, 2부 리그 간 승강제가 정착되어 있고, 중하위 팀의 우승도 K리그 보다는 빈번하기 때문이다. 리그 종반을 달리는 이맘때면 1부에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몸부림이 볼 만하다.
리그에 참여하는 클럽 수에선 아직 국제적인 수준에 못 미친다. 카타르가 10개, 사우디와 UAE는 1부리그 팀이 각각 12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비슷한 수의 클럽으로 운영되는 2부 리그가 있어 나름대로 업 다운제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전국 단위의 유스리그와 17세 리그가 정착돼 있는 모습은 한국의 축구 현실보다는 몇 걸음 앞서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축구환경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우선 기후. 7-9월 3개월 정도를 빼면 그리 덥지도 않다. 나라와 도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1년 중 절반 이상 긴소매 상의와 긴바지를 입어야 한다고 보면 된다. 설기현이 데뷔전을 치른 1월 19일 저녁 킹파드스타디움의 기온은 섭씨 10도 안팎이었다. 사람들은 순박하기 그지없다. 우리에게 인상 지워진 무슬림은 미국의 시각일 뿐이다. 음식도 유럽보다는 적응이 쉽다.
그럼, 돈은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국가대표급 선수라면 대충 K리그의 4-5배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대표급이라야 입단이 원활하다고 보면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중동축구의 수준은 K리그보다 높다는 인상을 받았다.
빅리거의 자존심을 세우긴 어려워도 축구만 잘하면 영웅 대접을 받는 게 중동축구다. 벨기에 안더레흐트에 이어 알 힐랄에서 설기현과 함께 뛰고 있는 스웨덴 출신 크리스찬 빌헬름손은 회식 때마다 왕자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는데, 데뷔 초 몇 게임 잘하고는 미국산 지프차 ‘허머’를 구단주로부터 선사 받아 요즘도 뽐내며 타고 다닌다. 영웅이 되기도 쉽지만 역적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다. 하지만 그런 스트레스를 즐길 수 있다면 해볼만한 도전이다.
최근 도입된 아시아쿼터제는 그래서 우리 선수들에게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킬 호재다. 두바이의 경기가 최악이라지만 아직 오일달러는 경제위기의 여파에서 빗겨나 있다. K리그 클럽들에겐 안됐지만, 어쩌겠나. 어차피 선수들도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을.
김동국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데리고 있는 중견 에이전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