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언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 투어밴에 몰려든 선수들 왜?

  • 입력 2009년 4월 24일 08시 23분


“제주 강풍 뚫어라” 그린밖 클럽전쟁

긴 러프와 빠른 그린, 좁은 페어웨이도 버거운데 강한 바람까지 몰아친다면 선수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코스 공략부터 플레이 전략을 새로 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골프는 스포츠라기보다는 물리학이나 수학이다.

나흘 동안 진행되는 골프대회에서 변화는 수시로 찾아온다.

변화에 가장 빠르게 대처하는 방법은 알맞은 클럽의 선택이다.

23일 국내 유일의 유러피언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이 열리는 제주 핀크스 골프장의 클럽하우스 옆 주차장에선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수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클럽에 이상이 생겼거나 코스 공략을 위해 클럽의 스펙을 점검 받으려는 선수들이 주차장에 세워진 투어밴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투어밴은 선수들에게 일종의 긴급차량 앰뷸런스다.

경기 중 클럽이 부러지는 등의 이상이 생길 경우 곧바로 수리하거나 새것으로 교체해주는 일을 담당한다. 선수들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다.

1라운드 경기가 진행 중인 오후 2시, 플레이를 마친 지난해 챔피언 그레엄 맥도웰이 캐디와 함께 캘러웨이 투어밴에 들어왔다.

“드라이버가 밀려서 고전했다”는 맥도웰은 기존 드라이버 대신 드로(Draw)용 드라이버를 새로 만들었다. 맥도웰은 2라운드부터 이 드라이버를 사용한다.

어니 엘스는 그립을 교체했다. 그는 유명 스타답게 그립 하나에도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 다른 선수들이 비해 손이 큰 엘스는 샤프트에 테이핑을 무려 4번이나 감는다. 보통 선수들은 한 번만 감는다.

손이 워낙 커 일반 그립을 사용하면 너무 얇게 느껴진다. 엘스의 장갑사이즈는 28호다. 국내 선수 가운데 손이 가장 크다는 배상문(26호)보다 2호나 더 크다. 이렇다보니 그립 하나도 평범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캘러웨이골프 이태희 대리는 “보통 그립을 교환할 때 헌 그립을 찢어내고 테이핑을 벗긴 후 새로운 테이핑과 그립을 장착한다. 그러나 엘스는 테이핑이 벗겨지지 않도록 조심해달라고 주문했다. 자기 손에 딱 맞게 감아 놓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흠이 생기면 그립감이 달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도 더 오래 걸렸다. 대개는 그립 1개를 교환하는데 1∼2분이면 충분하다. 엘스의 클럽 13개를 모두 교환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국내파 선수들도 클럽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

1라운드를 6언더파 66타로 마친 강경남은 바람과 긴 러프에 대비해 드라이버와 웨지를 교체했다.

드라이버 로프트는 9.5°를 사용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강한 바람을 뚫기 위해 8.5°로 교체했다. 화요일에 교체해 이틀 동안 적응하고 곧바로 대회에서 사용했다. 그 덕분에 1라운드에서 최고 330야드까지 날리는 효과를 봤다.

긴 러프에 대비해선 웨지의 바운스(Bounce)를 낮췄다. 52°와 58° 두 가지 웨지를 사용하는 강경남은 바운스를 14°에서 11°와 12°로 깎았다. 바운스는 헤드 솔(Sole) 부분의 누워진 각도로 바운스가 낮을수록 러프에서도 클럽이 잘 빠져나가고, 땅을 깊게 파낼 수 있다.

강경남의 선택은 만점 효과를 발휘했다.

강경남은 장갑도 5켤레 더 가져갔다. 손에 땀이 차면 스윙 중 그립이 돌아갈 수 있어 홀마다 장갑을 바꾼다. 강경남은 골프백 속에 10개가 넘는 장갑을 넣고 다닌다.

허원경도 드라이버의 로프트를 바꿨다. 10.5°를 사용했다가 바람 때문에 볼이 뻗지 못하자 9.5°로 급하게 교체했다.

C선수는 2개의 드라이버를 사용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탄도와 구질을 마음대로 구사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예 기능이 전혀 다른 2개의 드라이버를 사용할 생각이다.

2006년 마스터스 때 필 미켈슨이 썼던 방법이다. 당시 미켈슨은 오거스타 코스를 공략하기 위해 똑바로 보내는 뉴트럴과 드로용 드라이버 2개를 들고 출전했다. 코스 공략에 성공한 미켈슨은 그린재킷을 입는 데 성공했다.

프로 대회에서 선수들은 14개의 범위 이내에서 자유롭게 클럽을 구성할 수 있다. 드라이버만 14개 들고 출전해도 규정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쉽게 샷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화려한 플레이를 위해 선수들은 이렇게 뒤에서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고 고민한다.

서귀포|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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