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는 힘이 있다. 비근한 예로 ‘자율’은 긍정적, ‘관리’는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배어있다. 그러나 이미지와 현실은 별개다. 프로야구로 좁혀 봐도 관리야구는 자율야구를 압도해왔다.
올 시즌 역시 이 추세는 극명한데 자율파의 대표격인 롯데는 26일까지 최하위(7승13패)로 처져있다. 야구계에선 “롯데가 SK도 아니고, 승패차 -6을 따라잡기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있다. 동시에 로이스터 감독(사진)이 이 고비를 어떻게 다룰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응시하고 있다.
○자율야구의 빛과 그림자
SK 김성근 감독의 말이다. “‘자율’ 그러는데 한번 봐라. 한 시즌 반짝 성적이 났다 치더라도 계속 유지된 적이 있었는가?” 재미있게도 ‘자율야구’의 창시자처럼 평가받는 이광환 전 LG 감독조차 이 용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감독은 “내 야구는 자율야구가 아니라 시스템야구”라고 항변한다. 현장 감독들은 ‘자율=방임’으로 연상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한국야구에 로이스터가 왔다. 트레이닝부터 게임운용까지 ‘정통’ 자율이다. 감독이 아니라 매니저다. 곧 감독의 일은 투수교체 타이밍을 잡고 팀 케미스트리를 좋게 하는 것 외에 없는 것이다. 단장에 맡기고, 선수에 맡긴다.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비즈니스 하는 자리다. 연패 중에도 로이스터는 인터뷰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속이야 어떻든 겉은 늘 밝다. 충격요법도 없다. 좌투수가 나왔을 때 라인업을 조정하는 정도다. 선발진도 5선발을 빼면 규칙적이다.
○그럼 로이스터는?
재밌는 대목은 로이스터 방식이 작년과 달리 올해엔 안 되고 있는 점이다. 덕분에(?) 한국 팬들은 정통 자율야구가 고비에 처했을 때 어떻게 리액션을 취하는지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26일 만난 로이스터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5연속 볼넷을 준 김대우에 대해선 “(바로 2군에 보냈지만)신인 첫 등판인데 무리한 요구일 수 있었다”고 감쌌다. 전날의 형편없는 패배 속에서도 “선수들이 고개 안 숙이고 나간 건 괜찮았다”고도 했다. 야구는 못해도 기죽지 말고 의연하기. 로이스터의 지향부터가 그렇다.
메이저리그에서 궁극의 리더십은 ‘감독이 있는지조차 모를 경지’라고 한다. 로이스터는 지금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패턴대로 하고 있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사직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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