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지면 외박은 없다”
2005년 창단한 경찰 야구단은 만년 하위 팀이다. 2006년 첫 시즌에 2군 북부리그 6개 팀 가운데 5위, 지난해에는 꼴찌였다. 6개월에 걸친 장기 레이스를 펼치기에 25명은 너무 적었다. 게다가 선수들은 모두가 동기다. 창단 멤버 25명은 고스란히 2007년 말 전역했다. 올 시즌 뛰고 있는 2기 멤버들은 지난해 3월에야 팀을 구성했다. 손발을 맞추지 못한 선수들에게 개막전은 연습경기나 다름없었다.
5월의 한낮은 뜨거웠다. 경기 구리시에 있는 LG의 2군 홈구장 챔피언스클럽에 모인 선수들은 얼굴에 선크림을 잔뜩 발랐다. 한 시즌 89경기 모두를 낮에만 하는 2군 선수들에게 선크림은 필수품이다. 경찰은 7일 LG 2군과 대결했다. 3연전 가운데 마지막 경기. 전날까지 성적은 1승 1패였다.
“오늘 이겨야 외박을 나갈 수 있는데….” 경기를 지켜보던 한승엽이 말했다. 그는 글러브와 야구공 대신 스피드건과 볼펜을 들고 있다. 양 팀 투수가 공을 던질 때마다 구속과 구종, 그리고 타구 방향 등을 열심히 기록했다. 2군은 기록원이 따로 없기 때문에 선수들이 돌아가며 기록을 한다. 지난달 중순 연습을 하다 허벅지를 다쳐 당분간은 등판할 수 없는 한승엽은 일주일째 기록만 하고 있다. 유 감독은 부임 후에 주간 승률이 50%가 넘으면 1박 2일 외박을 주기로 했다. 3연전의 경우 2승을 거두면 하룻밤이나마 집에 갈 수 있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무섭기만 했는데 훈련을 거듭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경찰 야구단은 11일 현재 2위에 올라 있다. 지난달 하순까지만 해도 선두를 달렸다. 올해는 새로 팀을 꾸릴 필요가 없었던 까닭에 지난해 말부터 부산∼제주∼부산∼대전을 오가며 마무리 훈련과 연습 경기를 한 덕분이다. 창단 후 처음으로 대만 전지훈련까지 계획했다 치솟은 환율 때문에 애꿎은 예약금만 날렸지만 선수들은 모처럼 훈련다운 훈련을 했다.
○ 라이벌보다 무서운 적은 더위
유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투수 전원 대기령을 내렸다. 어차피 몇 명 안 되지만 선발, 마무리 구분 없이 등판을 시키겠다고 공언한 것. 삼성에서 뛰던 조영훈(27)은 4번 타자를 맡아 리그 홈런 선두(9개)지만 올 시즌 5경기에 투수로도 나섰다. 팀에 왼손 투수가 없기 때문에 급할 때면 왼손 타자를 상대로 왼손을 쓰는 그가 원 포인트 릴리프로 나섰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한 구단 등록 선수는 총 63명. 이 가운데 1군 엔트리는 26명이다. 나머지는 2군으로 내려간다. 이 숫자만 해도 36∼37명이다. 신고 선수는 등록 선수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날 경기에 나설 수 있는 LG 선수는 신고 선수 17명까지 포함해 50명이 넘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리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선수 인생이 망가진다.”
경찰 야구단 선수 25명 가운데 13명은 1군 경험이 없다. 이 중 11명은 지명조차 받지 못했다. 지난해 프로야구 2차 지명 대상자는 750명. 그 가운데 프로에 입단한 선수는 65명으로 취업률은 8.7%에 불과하다.
“전·의경 제도 폐지로 경찰 야구단이 2012년 없어진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팀이 없어지면 병역을 해결해야 하는 수많은 젊은 선수들의 기회가 반으로 줄어든다.”
유 감독의 소원은 군 라이벌 상무(34명)만큼 선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난해 상무와 12번 만나 1승 1무 10패에 그쳤던 경찰은 올해 3차례 대결에서 이미 1승(2패)을 거뒀다. 그는 올 시즌을 계기로 경찰과 상무가 진정한 라이벌이 되기를 기대했다.
○ 물러설 곳 없는 선수들
“팀에 입단한 것만 해도 행운이죠. 하지만 전역 뒤 프로에서 뽑아주지 않으면 갈 곳이 없어요.”
한승엽은 원광대 4학년이던 2007년 10월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1차 테스트에서는 탈락했고 2차에서 붙었다. 44명의 투수가 응시해 11명이 경찰 유니폼을 입었다. 야구를 하며 병역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기쁨도 잠시. 한승엽은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왜 힘든 운동을 하느냐고 하셨죠. 어릴 때부터 야구하는 걸 반대하셨는데….”
어머니는 다행히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지금은 장성한 아들이 1군 무대에서 꿈을 펼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한승엽 같은 아마추어 출신 선수가 병역을 미치고 프로팀의 러브 콜을 받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동계훈련을 열심히 해 기대가 컸는데 이렇게 기록만 하고 있으니 답답해요. 6월부터 경기에 나간다고 해도 넉 달 정도밖에 던질 기회가 없네요. 죽을힘을 다해봐야죠.”
이날 9회초까지 6-4로 앞섰던 경찰은 9회말 2점을 내주고 동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1군과 마찬가지로 2군도 무승부는 패배로 계산한다. 아쉽게 비겼지만 유 감독은 냉정했다. 외박을 눈앞에 뒀던 선수단은 짐을 꾸려 벽제 숙소로 돌아갔다.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안 했다면 그것을 깨닫는 것만으로 이곳에서의 생활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경찰 야구단은 올 시즌을 마치면 다시 새롭게 팀을 꾸려야 한다. 어렵게 만들어낸 돌풍은 더위와 함께 사라질지 모른다. 선수들의 표정은 절박해 보였다.
구리=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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