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하늘에서 원정대를 도와줬을 것입니다. 동생이 직접 성공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분들도 노력 많이 한 거 잘 알고 있어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1일 오희삼 씨(42)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어렵게 건넨 질문에 힘겹게 답을 했다. 작은 목소리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는 박영석 대장과 함께 2007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루트 개척에 나섰다 목숨을 잃은 오희준 대원의 형이다. 그는 박영석 원정대가 4전 5기 끝에 남서벽에 새 길을 뚫었다는 소식에 축하 인사부터 전했다. 하지만 진한 아쉬움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동생의 기일(16일) 즈음에 그는 산악회원들과 추모 등반을 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동생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그 역시 산을 좋아했던 산사나이였다.
2007년 오희준 대원과 함께 신루트 개척에 선봉장 역할을 하다 생을 마감한 이현조 대원의 형 이현홍 씨(44)도 기일을 일주일 앞두고 동생을 찾았다. 죽어서도 산을 떠나지 않는 동생, 그 동생이 잠들어 있는 광주 무등산 어느 나무 밑에서 그는 한참을 서 있었다.
2007년 5월 16일 두 형은 믿을 수 없는 사고 소식을 들었다. 오희준, 이현조 대원은 해발 7700m 지점에 캠프4를 구축하고 정상 공격을 준비하던 중 산사태와 낙석으로 변을 당했다. 박영석 대장은 동생의 유골을 안고 돌아왔다. 박 대장은 한없는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주위에선 박 대장의 욕심이 화를 부른 거 아니냐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던 동생의 시신을 확인해야 했던 박 대장의 마음도 지금 두 형의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에.
1990년대 말부터 박 대장은 지방 출신인 오희준, 이현조 대원을 자신의 서울 전셋집에서 데리고 살았다. ‘대장 형님’ 덕분이었을까. 오희준 대원은 히말라야 8000m급 10개봉을 정복하는 동안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기록을 세웠고 이현조 대원은 2004년 박 대장과 함께 남극점을 밟았다.
두 대원의 형들은 박 대장을 오래전부터 신뢰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축하는 깎아지른 절벽 앞에서도 당당했던 박 대장의 심금을 울린다. 박 대장은 20일 정상에 오른 뒤 가슴속에 품고 갔던 두 대원과 1993년 역시 남서벽에서 숨진 고 남원우, 안진섭 대원의 사진을 꺼내 눈 위에 올려놓고 추모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