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지역은 축구에 관한 한 하나의 생활권이다. 보고 싶은 축구경기를 TV로 시청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두바이스포츠, 아부다비스포츠, 사우디스포츠, 카타르스포츠 등 이른바 스포츠전문 채널이 24시간 돌아간다. 리그, 각종 컵대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등 걸프지역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축구경기는 죄다 안방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유럽리그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아랍권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
최근 두바이 알 샤밥 클럽의 CEO 압둘카데르를 만나 얘기하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설기현에 대해 손바닥처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기현의 경기는 리그건, 컵대회(4개)와 ACL을 막론하고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봤다는 것이다. 스카우트를 매번 사우디에 파견하느냐는 ‘우문’에, ‘왜 가느냐’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TV에서 걸프지역의 모든 경기가 생중계되는데 뭣 하러 가느냐는 얘기였다. 순간 뒤통수를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그 엄청난 정보력, 소름이 끼쳤다. 우리가 TV 중계를 안 한다고 아우성치는 순간에도 그들은 앉아서 한국축구를 속속들이 분석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마치 벌거벗겨진 것처럼.
설기현이 유명해진 건 이런 막강한 TV 네트워크를 통해 경기력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득점력이 빈곤한 것도 그들은 아주 관대하게 봐줬다. ‘아랍 선수들은 개인플레이에 익숙한데 설기현은 팀플레이를 할 줄 안다. 팀을 유기적으로 만들려다 보면 득점은 어려울 수 있다. 그의 플레이스타일은 아랍축구에선 신선한 충격이다. 중동축구는 그런 선수가 필요하다.’ 내놓을 것 없는 성적표에도 설기현이 유명해진 까닭에 수긍이 갔다.
반사적으로 떠오른 건 우리 대표팀이다. 중동축구는 차치하고라도 J리그, 중국 슈퍼리그는 언감생심, 국내 프로경기조차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처지여서 때만 되면 코칭스태프의 발길이 바쁘다. 유럽이고 일본이고 대표선수들을 체크하러 다니느라 시간낭비, 돈낭비가 보통 아니다. 현장과 TV는 보이는 게 다르다지만 어쨌든 정보력으로 본 한국축구는 암울하기만 하다.
|두바이에서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에이전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