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 LG 톱타자 ‘쿨가이’ 박용택

  • 입력 2009년 5월 26일 08시 28분


땀으로 일군 타율 0.393…살맛 나요!

작년 0.257·홈런 2개 ‘최악 부진’ 첫시련에 주위선 ‘내리막길’ 수군… 오기 발동, 스스로 혹독한 채찍질

LG 박용택(30·사진)은 요즘 “살 맛이 난다”고 했다. 무심코 던진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사실은 절실한 마음이 담긴 한마디다. 지난해 그를 괴롭혔던 어둠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의미라서다.

부상과 부진, 그리고 이어진 트레이드설. 하지만 박용택은 지금 ‘LG에 그가 꼭 필요한 이유’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늘씬하고 깔끔한 외모 속에 감춰졌던 독기. ‘메트로박’도 ‘쿨가이’도 아닌 인간 박용택의 속내는 예상보다 더 깊고 단단했다.

○‘전설’이던 소년의 평탄한 야구인생

1990년 6월3일 일요일. 고명초등학교 5학년 박용택이 처음 야구를 시작한 날이다. 그는 학교 최고의 ‘킹카’였다.

공부든 달리기든 팔씨름이든 늘 1등만 했고, 또래들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컸다. 최재호 감독(현 신일고)은 박용택을 야구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6개월 넘게 등하교 길목을 지켰다. 하지만 야구부 행을 결심한 계기는 의외로 싱거웠다. 친구들의 경기를 구경하다 문득 “내가 하면 더 잘하겠는데?” 싶었고, 입단과 동시에 선발 출장했다가 2안타를 쳤다. 그렇게 눌러앉았다.

농구선수(대경고-경희대-한일은행) 출신인 아버지 박원근(63) 씨는 야구를 하겠다는 아들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대신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끈기’를 주입시켰다. “운동은 장난이 아니다. 한 번 야구를 시작한 이상, 평생 이걸로 밥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라.” 그래서일까. 박용택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매번 내가 꿈꾸던 팀에 몸담는 행운을 누렸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옆자리 친구는 야구선수 박용택의 일대기를 만화로 그리곤 했다. 휘문중-휘문고-연세대를 거쳐 LG에 1차지명으로 입단하는 친구의 미래. 대학교(고려대)만 그 시나리오와 달라졌지만 그 역시 스스로의 희망에 의해서였다.

“참 평탄한 인생이었다”는 회상. 적어도 2008 시즌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처음이라 더 아프고 쓰렸던 시련

지난해 박용택은 입단(2002년) 이후 가장 적은 96경기에 나섰다. 타율은 고작 0.257. 데뷔 후 처음으로 세 자릿수 안타 생산에 실패했고, 꾸준히 10개 이상 쳐온 홈런도 2개에 그쳤다. 여기저기서 “박용택은 이제 내리막길인가봐” 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한 게. 스스로도 그랬다. ‘진짜 이제 안 되나. 야구는 내 길이 아니었던 걸까.’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종종 ‘아쉬운 선수’라는 얘기를 듣곤 했었지만 그 때처럼 원인조차 파악 안 되는 부진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귀를 막고 사는 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대인기피증까지 찾아왔다. 사람들의 동정 어린 눈빛도 싫었다. 경기가 끝난 늦은 밤, 잠실철교로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할 때면 이런저런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가끔은 순간적으로 내가 핸들을 꺾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곤 했다.”

이 때 곁에서 잡아준 게 휘문고 선배 박명환과 옛 동료인 김용우(SK)였다. 그들은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분명 앞으로 네 선수생활과 지도자생활에 좋은 계기가 될 거야”라고 위로했다. 울어보지 않은 자는 사람들이 우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박용택의 첫 시련은 그런 깨달음을 안겼다.

○안주하는 선수? 노력하는 선수!

억울하기도 했다. “나는 정말 성실하고, 연습을 많이 하는 선수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다. 그런데 늘 대충 하는 선수로 보이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했다.” 매끈한 외모 탓도 있고, LG 선수들 전체에 대한 선입견 탓도 있다. 하지만 그는 강조했다. “다른 팀에 있다 LG에 온 선수들은 하나같이 ‘LG는 쓸데없이 연습을 많이 해서 오히려 야구를 못 한다’는 말까지 한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주전 자리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시즌을 맞는 건 처음이었으니 더 그랬다. ‘외야엔 더 이상 박용택의 자리가 없다, 이제 남은 건 트레이드 뿐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말’들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힘주어 말했다. “정말 단 한번도 내가 밀려날 거라는 걱정은 해 본 적 없다. 다만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됐구나’ 싶어서 오기가 불끈 솟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땀을 흘렸고, 가장 잘 맞았던 시절의 타격 장면을 보면서 연구를 거듭했다. 몸에도, 마음에도 불필요한 건 모두 버렸다.

○LG도 ‘펄펄’…‘출루율 4할’이 목표

그 결과물은 이렇다. 25일까지 총 26경기에 출전해 타율이 무려 0.393(112타수 44안타). 출루율은 0.469다.

의욕이 앞서 무리를 했고, 그 탓에 부상을 얻어 초반 18경기를 거른 게 유일한 아쉬움. 하지만 이제 규정타석도 눈앞이다. 박용택은 털어놨다. “이번에 이를 악물고 해보니, 그동안 열심히 했다고 믿었던 게 ‘최선’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숫자에 대한 욕심은 버렸다. 타율 4할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LG의 톱타자로서, 출루율 4할은 꼭 유지하고 싶다.”

박용택과 테이블세터를 이루는 후배 이대형은 “타격하는 형의 모습을 지켜보고 타석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박용택도 그 어떤 칭찬보다 후배의 한 마디를 더 기뻐했다. “김정민 선배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기술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본받을 면이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선배 말이다.” 그는 그 목표를 향해 다가서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이제는 웃음을 완전히 되찾았다. 동갑내기 아내 한진영 씨, 딸 솔비(2)와 단란한 가정을 꾸린 그는 슬슬 둘째 아이를 낳을 계획도 세우고 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 후의 열매가 더 달게 느껴지는 법.

박용택의 행복한 맹타가 LG의 ‘살 맛 나는’ 시즌을 이끌고 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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