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4할타자… 꿈만은 아니다?

  • 입력 2009년 5월 28일 02시 59분


■ ‘진화론 대가’ 굴드의 관점으로 본 ‘4할타자 실종과 부활’

4할 타자는 꿈일까. 로베르토 페타지니(LG)와 김현수(두산)가 두 달 가까이 4할 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27일 현재 페타지니는 0.410, 김현수는 0.405. 최근까지 4할을 넘었던 정근우(SK)는 타율이 0.395로 떨어졌지만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이들 중 누가 시즌이 끝날 때까지 4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진화론의 대가’로 불렸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가 살아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4할 타자는 꿈이다.”

○ 메이저리그는 1941년 이후 전무

4할 타자는 많았다. 134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는 28번이나 4할 타자가 타격왕을 차지했다. 타이 코브(1886∼1961)는 세 시즌이나 4할을 때렸다. 하지만 대부분 야구의 틀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인 20세기 초를 전후해 쏟아졌고 1941년 테드 윌리엄스(보스턴)가 0.406을 기록한 뒤 맥이 끊겼다. 국내에서는 프로 원년인 1982년 일본에서 뛰다 건너온 백인천 당시 MBC 감독 겸 선수가 4할(0.412)을 기록했지만 그때는 경기 수도 적었고 일본과 한국의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윌리엄스 이후 70년 가까이 메이저리그 최대의 수수께끼는 ‘4할 타자의 실종’이다. 이를 놓고 전문가들의 해석이 쏟아졌다. 투수와 수비수의 실력 향상 때문이란 게 대표적이다. 또 20세기 초반과 달리 마운드에는 분업 시스템이 정착했다. 그러나 굴드는 이런 해석은 투수나 수비수처럼 타자의 기량도 발전한 점은 설명하지 못한다고 봤다.

○ 야구의 진화=4할 타자의 절멸(絶滅)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올해 다시 조명을 받았던 굴드는 야구광이었다. 그는 저서 ‘풀하우스’(1996년)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야구의 진화로 전체 선수 수준이 올라가면서 ‘변이’가 줄었고 이로 인해 4할 타자가 사라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굴드는 1880년부터 100년 동안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분석해 평균 타율의 변이 정도가 명백히 감소했음을 확인했다. 변이 정도는 19세기에는 급속히, 20세기 초에는 완만히 떨어지다 1940년경부터 거의 일정한 수준으로 멈췄다. 그림(그래픽 참조)을 보면 좀 더 알기 쉽다. 평균 타율은 100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지만 넓적했던 타율 분포 곡선이 평균을 중심으로 좁아지면서 4할 타자의 몫이었던 오른쪽 꼬리 부분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4할 타자는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굴드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남겨 놨다. 그는 “내가 사용한 절멸이라는 단어는 종의 죽음과 같은 뜻이 아니라 불면 꺼졌다가 다시 켤 수 있는 촛불과 같은 의미”라며 “4할 타자가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사건이 됐지만 ‘초월’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페타지니와 김현수는 올 시즌 178경기를 마칠 때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전까지 2명 이상이 가장 오랫동안 4할 경쟁을 한 것은 1987년 장효조(삼성)와 김용철(롯데)의 174경기였다. 28년 역사의 국내 프로야구에서 ‘초월자’가 나올 수 있을까.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바람의 아들’ 이종범 4할 문턱서 눈물▼

美 MLB 커루-브렛-그윈도 아슬아슬 대기록 놓쳐

1941년 테드 윌리엄스 이후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타자가 4할 타율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통산 7차례나 타격왕을 차지했던 로드 커루(미네소타). 그는 1977년 6월 26일부터 7월 10일까지 4할을 유지하다 0.388로 시즌을 마쳤다. 3년 뒤 조지 브렛(캔자스시티)은 뒤늦게 불방망이를 뽐내며 8월 17일 4할을 넘겨 기대를 모았지만 최종 타율은 0.390이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4할 타자에 대한 관심은 1994년 다시 뜨거워졌다. 토니 그윈(샌디에이고)이 불을 댕겼다. 5월 초반에 4할을 훌쩍 넘겼던 그는 8월까지 0.390대를 유지하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선수 노조의 파업으로 45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바람에 0.394로 시즌을 마쳤다. 그윈은 그해 마지막 10경기에서 타율 0.475를 기록할 정도로 페이스가 좋았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다.

국내에서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KIA)이 백인천(0.412) 이후 가장 4할에 근접했던 타자다. 데뷔한 1993년에 신인 최다 안타(133개)를 때렸던 그는 이듬해 8월 21일 쌍방울전에서 4타수 4안타를 몰아쳐 0.400을 채웠지만 결국 0.393으로 시즌을 마쳤다.

73년 역사의 일본프로야구에서는 4할 타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980년대 한신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 랜디 바스가 1986년 타격 3관왕 2연패를 이루면서 기록한 0.389가 최고 타율이다. 1967년부터 3년 연속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던 장훈은 기세를 몰아 1970년 4할 타율에 도전했지만 자신의 최고 타율(0.383)을 기록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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