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령 야수 김동수, 41세 돌아온 ‘내조의 제왕’

  • 입력 2009년 6월 2일 08시 22분


20년. 강산이 두 번 변했을 시간 동안 그라운드 가장 안쪽 홈 플레이트에 쭈그리고 앉아 공을 받아온 포수. 정상의 자리에도 올랐고 은퇴 위기의 기로에도 섰지만 오늘도 여전히 그 곳을 지키고 앉아 스무 살도 더 어린 투수의 공을 받는다. 송진우(43)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프로야구 선수. 그리고 현역 최고령 야수 김동수(41)다. 1968년생으로 우리나이로 마흔 둘. 그러나 김동수는 여전히 무거운 프로텍터를 온 몸에 감싸고 20년 째 포수로 그라운드에 서있다. 체력적인 부담이 크고 부상 위험이 높은 포수. 그래서 더 빛나는 기록 200홈런과 2000경기 출장. 송진우와 양준혁처럼 그 역시 한 경기, 한 타석이 새로운 기록이다.○조용히 은퇴를 준비했던 또 다른 전설

김동수는 코치와 선수 중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지금 경기에 나가니까 선수라고 불러주세요”라며 웃었다. 사실 김동수는 불과 며칠 전까지 “이제 여기가 끝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조용히 현역 생활을 정리하고 있었다. “시즌 전에 감독님이 그라운드 보다는 불펜에서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한 후 시범경기부터 뛰지 않았죠. 솔직히 이렇게 빨리 다시 마스크를 쓸 줄 몰랐습니다.”

은퇴의 기로. 신인왕, 7차례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국내 첫 FA계약 야수까지 1990년대를 대표한 포수로 화려한 현역시절을 보냈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코치수업에 주력하던 김동수는 히어로즈가 9연패를 당한, 그리고 연패에 마침표를 찍은 5월 17일 LG와 더블헤더부터 전격 1군 엔트리에 포함됐다. 젊은 투수들이 연패에 주눅 들며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자 김시진 감독은 김동수를 홈플레이트에 앉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이후 히어로즈는 팀 최다 기록인 6연승 포함, 10승2패를 달리며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투수 리드 뿐 아니라 타격도 말 그대로 ‘회춘’이다. 27타수 12안타, 타율 0.444에 홈런 2방. 특히 2루타를 5개나 날리며 장타율이 0.852에 이른다. 김시진 감독이 “투수 리드하라고 올렸더니 타격까지 장난 아니다”고 흐뭇해할 만하다.

김동수는 “사실 후배들의 부상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훈련을 했지, 이번 시즌 경기에 나갈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죠. 팀도 이기고 방망이도 잘 맞으니까 기분은 참 좋네요”라고 했다.

○한국시리즈 뛸 때 태어난 후배의 공을 받는 아저씨 포수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의 바이블로 불리는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포수를 야수 중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말했다. 투수를 리드하고 야수들의 수비위치를 신경 쓰며, 타자와 수싸움을 벌여야하는 포지션, 그리고 팀의 가장 중요한 아웃, 상대방의 득점을 저지하기 위해 온 몸을 던져야하는 위험한 자리다. 특히 한 경기 200개에 가까운 공을 받고, 던져야하는 체력적인 부담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도 30대 후반까지 장수하는 포수를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김동수는 20년째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역대 세 번째로 고지를 밟은 2000경기 내내 포수였다.

김동수는 “신인선수들이 절 보면 얼마나 아저씨 같겠어요”라며 웃었다. “저도 신인 때 14년 선배인 김재박 감독님 보면 진짜 아저씨 같았어요. 그런데 저보다 스무 살 씩 어린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어요. 팀 막내 강윤구 생일이 1990년 10월이래요. 그 때 제가 뭐하고 있었는지 아세요? LG에서 한국시리즈 뛰고 있었어요. 윤구 보면 놀려요. ‘너 막 태어났을 때 형은 한국시리즈 나가 있었어’라면서요.(웃음)”

○레전드? 성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김동수는 “담배는 절대 피우지 않았고 술도 자제했어요. 무조건 묵묵히 열심히 하자고 했는데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동안 별일이 다 있었죠. 입단첫해 신인왕에 우승까지 했고, FA첫 수혜자기도 했고. 그리고 방출도 돼봤고 연봉 삭감율 기록도 제가 갖고 있어요.(2008년 히어로즈 창단 첫해 3억원에서 8000만원으로 73.4%% 삭감됐다) 그동안 항상 ‘내 인생과 직업은 야구다’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열심히 했던 선수로 기억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라고 지난 20년간을 돌아봤다.

○지도자의 꿈 그리고 세 아이의 아빠

김동수는 개막 후 한 달 동안 불펜에서 코치로 새로운 첫 발을 내디뎠다. “예전에 선배들 한 마디에 울고 웃고 했던 게 기억나요. 다 동생들 같아서 어떻게라도 용기를 주고, 돕고 싶습니다. 그라운드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덕아웃에 앉아 경기를 보고, 김시진 감독님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정식 코치가 되면 더 많이 배워야겠죠.”

김동수는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 그리고 갓 돌이 지난 세 아이의 아빠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 아들이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걸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현역에서 뛰는 게 소원이었는데, 둘째 아이도 아빠가 야구선수라고 자랑해요. 제가 뭘 더 바라겠어요”라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리고 20년 동안 그라운드를 지킨 ‘노장’은 해탈의 경지에 오른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야구는 아웃이라는 죽음을 통해 스스로 희생한 게 기록이라는 문서로 영원히 기억되는 유일한 스포츠입니다. 저 역시 그 가치 있는 희생을 더 하고 싶지만 순리대로 해야죠. 순리대로.”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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