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아니, 꼭 이겨야만 했다. 본부석에서 익숙한 유니폼 대신 정장 차림으로 그라운드 위 동료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여자축구 최대 흥행카드, 대교 캥거루스와 현대제철의 2009 WK리그 6라운드 라이벌전이 열린 1일 수원 종합운동장. 대교의 원년 멤버이자 주장이었던 공격수 정정숙(27)의 입술은 굳게 다문 채였다. ‘이겨야 할 텐데, 잘해줘야 하는데….’
아쉽게도 한때 한국 여자축구 최고 공격수로 명성을 떨친 여걸은 당분간 뛸 수 없다. 위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기 때문. 4월29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위의 90퍼센트를 절개하는 대수술을 받은 그녀는 악물 치료를 받고 있다. 다행히 타 장기로 전이되지 않아 완쾌 가능성이 높다. 작년 말부터 위염 증세가 있었지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올해 3월부터 구토가 나왔고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은 결과, 청천벽력같은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회복까지 최소 8개월 이상 내다봐야 한단다.
하지만 정정숙은 외롭지 않다. 주장 완장을 수비수 류지은에 물려준 그녀는 경기도 시흥의 선수단 숙소를 떠나 부천에 있는 고(故) 최추경 전 대교 감독의 자택에 머물고 있다. 최 전감독은 2007년 지병으로 타계했지만 생전 고인이 자신을 딸처럼 여겨줬기 때문.
구단은 10월 계약이 만료될 정정숙이 마음놓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비 전액을 지원키로 했다. 또 창단 멤버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언제든 선수로 복귀시킬 계획이다. 현역이 어렵더라도 플레잉 코치 등 다양한 진로를 검토 중이다.
박제수 대교 과장은 “(정)정숙이는 팀의 상징적인 선수라 은퇴는 생각조차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박남열 감독도 “경기가 있으면 선수단 버스를 타고 이동해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본다. 의지가 강하고 성격이 밝은 친구”라고 칭찬했다.
이날 하프타임 때 대교는 구단 차원에서 마련한 1000만원과 전국 각지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2000만원 등 3000만원의 격려금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진짜 바람은 라이벌전 승리. 자신은 뛸 수 없어도 팀은 이기길 바랐다. 그러나 끝내 그녀의 기대는 이뤄지지 못했다. 대교는 현대제철에 전반에만 두 골을 내줘 0-2로 졌다. 쓰라린 패배.
아쉬운 듯 잠시 눈을 감은 정정숙은 애써 밝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동료들이 최선을 다했잖아요. 그래도 WK리그 원년 우승은 저희가 될 거에요.”
수원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사진 ㅣ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