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속 소녀’ 이선애, 여중생 반란

  • 입력 2009년 6월 5일 08시 50분


15세 소녀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메달을 만지작거렸다. 또래들과의 경기에서는 항상 1등. 하지만 성인언니들과의 대결에서 딴 은메달이라 소녀의 눈에는 금빛보다 더 반짝였다. 4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제63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 여자100m결승. ‘하니’ 이선애(15·대구서남중)는 김하나(안동시청·11초71)에 이어 2위로 골인하며 여중생 반란을 일으켰다. 이선애의 기록(11초88)은 최윤정(당시 성명여중)이 1986년 전국종별육상선수권에서 세운 여중100m한국기록(11초99)을 무려 23년 만에 뛰어넘은 것이었다.

○광속감각의 소녀

대구대천초등학교 3학년시절 열린 운동회. 이선애는 “2등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뛰쳐나갔다. 뒤통수를 보고 뛰어 본 적 없던 소녀는 정식선수가 됐다. 단거리 경남도대표로까지 활약한 어머니 김말연(44)씨에게서 물려받은 재능은 처음부터 번뜩였다.

서남중 전재봉(40) 감독은 “보통 스타트를 처음 배울 때는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지기 십상인데 (이)선애는 2번 만에 마스터했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이선애의 스타트 반응속도는 최고. 눈으로 볼 때는 분명 부정출발인데, 전자감응장치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선애의 근육 속에, 눈에 상이 맺히는 속도보다 더 빠른 광속 감각이 숨쉬는 셈. 서남중 권혁찬 코치는 “순발력과 민첩성 면에서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재능을 갖췄다”면서 “내년에는 한국기록(11초49)경신도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1세계육상선수권 파이널이 목표

이선애는 2008년과 2009년 5월, 제37·38회 소년체전에서 각각 11초74와 11초77을 기록했지만 2.0m/s 이상의 뒤바람 때문에 공인받지 못했다. 그래서 별명은 ‘바람을 몰고 다니는 소녀.’ 아직 성장 중이라 웨이트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는 근력을 보강해 ‘바람처럼 달릴’ 계획이다.

한 가지 아쉬움은 신장(162cm). 지도자들은 성장판이 열린 시점까지는 혹사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선애는 “165cm까지만 자랐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꿈을 밝힌 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 파이널에 진출에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보겠다”고 말했다. 2008베이징올림픽 파이널 최하위(8위)기록은 11초20이었다.

대구|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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