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길고 지루했던 한 달이었다. 5월7일 잠실 두산전. LG 좌완 에이스 봉중근(29)이 마지막 승리를 거둔 날이었다. 이후 다섯 번 더 선발로 나섰고, 그 중 세 번을 퀄리티스타트에 성공했다. 하지만 승운은 따르지 않았다.
윤석민(KIA)·류현진(한화) 등 내로라하는 투수들과 맞대결이 이어졌고, 그가 마운드에 오를 때면 타선이 침묵했다.
어느새 ‘불운한 투수’의 대명사가 돼갔다. 스스로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설상가상으로 왼쪽 팔꿈치에 통증까지 느껴졌다.
4일 잠실 한화전 등판을 이틀 앞두고는 “이번처럼 힘들게 다음 경기를 기다리는 건 처음인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LG의 에이스다. 무릎을 꿇을 순 없었다. 잠시 약해졌던 마음은 금세 추슬렀다.
“승수는 잃어도 사람은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발판 삼아 각오를 벼렸다. 10일 잠실 두산전. 그는 8이닝 무실점 역투로 팀의 3연패를 끊었다. 최하위로 추락할 위기에 놓였던 팀을 다시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벅찬 시즌 4승(7패)째를 따냈다.
단순한 1승이 아니었다. 그에게도, LG에게도 새로운 출발이나 마찬가지였다. 내용도 압도적이었다. 빠르고 공격적인 승부로 8이닝을 공 102개로 틀어막았다. 안타 5개는 모두 산발. 삼진도 7개를 곁들였다.
“불펜 투수들의 피로가 쌓였기 때문에 내가 오래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각오 덕분이었다. 타선도 모처럼 힘을 냈다. 2회 권용관의 2타점 적시타로 2-0 리드를 안겼다. 그가 등판한 13경기에서 선취점을 얻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게다가 발 빠른 이대형은 좀처럼 보기 힘든 그라운드 홈런으로 6회 3점을 쓸어 담았다.
봉중근은 “타선이 점수를 뽑아줬으니 내가 무조건 지켜내겠다는 마음 뿐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쁜 건 위기의 ‘팀’에 희망을 안겼다는 흐뭇함이었다. 봉중근은 “감독님이 선수들을 믿고 있으니 우리도 보답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다. 연패 중에 내가 승리를 못 따서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오늘 승리가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면서 “포수 (조)인성이 형의 볼배합도 좋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활짝, 크게 웃었다.
잠실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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