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징계 해제 요청 이후로 KBO는 고심을 거듭해왔다. 비교적 시시비비가 분명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결론을 도출했을 때 닥쳐올 반발을 고려해야 하는데다, 징계 해제 여부를 판가름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놓고도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일정 정도의 냉각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상벌위는 롯데의 요청이 있은 뒤로 9일 만에 소집되기에 이르렀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야구선수가 있어야 할 곳도 그라운드다. 따라서 사건 이후 속죄의 나날을 보내왔다는 정수근에게도 야구장에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함이 한국적 미덕에 부합할지도 모른다. 롯데도, 일부 팬들도 정수근의 선수생명을 되살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인정론에 불과하다. 또 야구에 관심이 있든, 없든 누구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기 귀찮을 때 빠질 수 있는 위험한 함정일 수도 있다.
해마다 우리 프로야구에서는 30-40명의 선수들이 구단에 의해서 해고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야구를 못하고, 그래서 팀에 보탬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린’ 선수들 가운데 프로야구계와 지속적으로 인연을 이어가는 이는 극소수다. 대다수는 당장 살 길이 막막하다.
인정과 이치로 따지자면 이런 선수들이야말로 KBO와 구단들이 우선적으로 구제해야 할 약자들이다. 얼마 전 출범한 KBO의 야구발전실행위원회도 야구인 실업 해소를 중점과제로 선언하지 않았는가.
정치적 논란을 비롯한 숱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유영구 총재다. 그래서 ‘무보수 명예직’으로 기꺼이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명예는 스스로 지켜야 남들로부터도 존중받는 법이다. ‘무기정학이 유기정학보다 약한 솜방망이가 되는’ 학교에서는 교장은 물론 연루된 학부모도 함께 욕을 먹게 마련이다.
아울러 이번 결정은 분명 KBO가 매년 발간하는 한국프로야구 연감에도 수록된다. 유 총재가 본인뿐 아니라 프로야구계 전체의 명예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를 기대한다. 인정에 이끌려 원칙과 명분을 상실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