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장치 전혀 없이 징계해제 각서라도 받았어야지” 의견도
12일. 조용하던 사직구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정수근의 ‘무기한 실격’ 징계를 해제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부터였다. 1군 등록은 후반기부터 가능하지만 확실한 복귀 일자를 받아든 것만으로도 정수근에게는 큰 소득이었다.
○정수근과 선수단, 11개월 만의 조우
오후 2시30분. 검정색 양복을 입은 정수근이 롯데 사무실에 들어섰다. 징계 이후 일부러 야구장을 멀리했다는 그는 사장과 단장에게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로이스터 감독에게 향했다. 환한 웃음과 포옹으로 맞이하는 감독의 모습. 정수근의 얼굴에도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다음은 선수단 차례였다. 정수근은 훈련 전 미팅에 참여해 옛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시 함께 잘 해보자”는 인사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일부 선수들은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정수근 구명 운동을 펼쳤던 주장 조성환과 이적생 홍성흔에게는 방송 인터뷰 제의가 쏟아졌다.
주장 완장을 임시로 물려받았다가 올해 정식 주장이 된 조성환은 “언제든 (완장을) 반납할 준비가 돼 있다. 난 욕심이 없다”며 웃었다.
○정수근 “그저 열심히 뛰겠다”
오후 4시30분. 정수근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료들의 환대 속에 활짝 웃던 그는 다시 긴장한 낯빛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도 즐겁게 야구하고 싶다. 또다시 물의를 빚는다면 더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겨주시는 팬들은 물론 비난하는 분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겠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지 5개월이 됐다. 아내가 ‘아들에게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걸 보여 달라’고 한 이후 나도 욕심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체력이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 그는 13일 재활군 훈련에 참가한 후 17일부터 2군에 합류한다.
○로이스터 “아직은 정수근 복귀에 큰 의미 없다”
‘복귀’와 ‘장밋빛 미래’는 동의어가 아니다. “개인에게는 참 잘 된 일”이라며 반겼던 로이스터 감독도 정수근 복귀의 ‘의미’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아직 그가 돌아오기까지 많은 경기가 남았다. 우리 팀에 전환점이 됐던 것은 오히려 손민한과 조성환의 복귀였다”면서 “정수근도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준비해야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모 구단 감독도 “일급타자도 아닌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냐”는 반응.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은 지난해 KBO 상벌위원 자격으로 직접 중징계를 결정했던 인물 가운데 한명이다.
김 감독은 “타팀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취했던 조치였다”고 설명하면서 “이번 논란으로 다른 선수들이 프로야구선수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산 시절 정수근의 은사였던 한화 김인식 감독도 “앞으로는 상대가 시비를 먼저 걸어도 무조건 참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더 조심해야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각 구단 단장, 대부분 ‘노코멘트’
다른 구단 프런트의 반응은 엇갈렸다. 대부분 ‘노코멘트’로 일관하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A구단 단장은 “재발방지 장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징계를 해제한 것은 문제가 있다. 하다못해 각서라도 받든지, 재발할 경우 어떤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명문화라도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B구단 단장은 “선수 나이도 있고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다. 1년 정도 유예기간이면 적당한 듯하다”고 했다. 정수근의 동생 정수성이 소속된 히어로즈 조태룡 단장은 “형제가 한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보기 좋은 풍경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직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사진 ㅣ 김종원 기자 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