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생리-통계학까지 강의
수강료 1600만원 협회서 지원
지난 5년간 수료자 80%가
국가대표-州대표 감독으로
“Ohne Trainer Keine Medaillen(트레이너 없이는 메달도 없다)!”
독일 엘리트 스포츠의 장점이자 특징 중 하나는 지도자의 자질과 역할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몸과 심리상태를 한눈에 꿰뚫어 그에 걸맞은 최적의 훈련 프로그램을 짜야 훈련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쾰른의 독일체육대 안에 있는 트레이너아카데미는 독일 엘리트 스포츠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최고 수준의 전문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서독이 동독에 뒤진 것이 설립 계기가 됐다. 당시 동독(3위)에 이어 4위를 한 서독은 전체 메달 수가 동독에 비해 20개 이상 적은 데 충격을 받았다. 동독을 앞지르려면 재능 있는 어린 선수의 발굴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안목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독일체육회와 독일올림픽위원회가 함께 설립했지만 트레이너아카데미는 하나의 독립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트레이너아카데미는 최고 수준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인 만큼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으려면 주 대표급 이상의 선수 경력과 해당 종목 협회가 인정하는 A급 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협회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전체 교육과정은 1300시간으로 3년 코스와 1년 6개월 코스가 있다. 90시간 정도인 각 종목 협회의 A급 지도자 양성 과정보다 15배 가까이 많은 시간이다. 해부학과 생리학, 통계학 등이 포함된 기초수업이 460시간으로 가장 많다. 지도자가 직접 수술 방법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훈련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신체 각 부분의 구조와 작동 원리, 바이오리듬 등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여러 관련 데이터에서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의미 있는 정보만 따로 뽑아 활용할 수 있도록 통계학도 가르친다. 트레이닝의 과학화인 셈이다. 지도법에 관한 실기와 필기, 구두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논문도 따로 써야 이수 자격이 주어질 만큼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수강료는 해당 종목 협회가 전액을 부담한다. 1인당 수강료가 9000유로(약 1600만 원)로 적지 않은 돈이지만 각 협회는 가능하면 많은 지도자를 이곳에 보내려고 한다. 그만큼 트레이너아카데미의 교육 효과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지난 5년간 트레이너아카데미를 거쳐 간 지도자의 80%가 국가대표 또는 주 대표 감독이 됐다는 사실이 이곳의 위력을 알게 해준다. 각 종목 협회가 국가대표 감독직 계약서에 트레이너아카데미 이수를 조건으로 내걸 정도다. 외국의 지도자들도 이곳을 찾아 강의를 듣고 있다.
쾰른=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스포츠 강국으로 계속 살아남으려면 뛰어난 지도자가 많아야 한다.”
옛 동독의 하키 국가대표 출신인 루츠 노르츠만 트레이너아카데미 원장(52·사진)은 “올림픽 같은 국제무대에서 수십 년간 좋은 성적을 유지하려면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끊임없이 발굴해 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안목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1990년 통일 후 참가한 5번의 하계 올림픽에서 종합 순위 3∼6위를 유지해 왔다.
그는 “하계 올림픽 종합 10위권의 스포츠 강국이라면 훈련 장비나 시설의 과학화 수준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는 양성하기에 따라 수준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1974년 트레이너 아카데미 설립 후 이곳을 거쳐 간 지도자는 1000명 정도. 올림픽 종목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의 50%가량이 이곳 출신일 정도로 독일 스포츠에서 트레이너아카데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노르츠만 원장은 “이곳을 거쳐가지 않은 나머지 50% 정도의 국가대표팀 감독은 동독 출신의 노장 감독들”이라며 “국가대표 감독 중 트레이너아카데미 수료자의 비율은 갈수록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기적인 훈련 성과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현역 은퇴 이후 인생까지 고려하며 가르치는 감독이 최고의 지도자”라며 “수강생들에게 부상 예방학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한다”고 말했다.
쾰른=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뛰어난 지도자 길러야 체육강국 영광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