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일 만에 두 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모두들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둘 다 해냈다. 지도자로도 성공시대를 열고 있는 ‘농구 9단’ 허재 감독(44) 얘기다. 그는 지난달 KCC를 우승으로 이끈 뒤 14일 일본에서 끝난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또 정상에 섰다. 일주일 동안 그와의 동행을 통해 비결을 살펴본다.
○ 변해야 산다
허 감독은 “스타 출신은 명장이 못된다는 말이 가장 싫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역시 한때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자주 짜증을 냈다. 주위의 조언에도 귀를 닫았다. 하지만 독불장군의 한계를 깨달으면서 달라졌다. 선수 처지가 될 때가 많았다. 일본에서 그는 다른 팀 경기 관전, 비디오 분석 등을 할 때 선수들의 컨디션을 감안해 스케줄을 조절했다. 경기 때 슈팅이 빗나가도 “괜찮아. 자신 있게 쏴”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억울한 판정을 당하면 한국어를 모르는 심판에게 욕까지 섞어가며 강한 어필로 벤치 분위기를 주도했다.
나고야의 한 한식당에서 열린 우승 뒤풀이에서 허 감독은 최근 대장 용종 제거 수술로 음주를 피해야 될 상황이지만 선수들과 일일이 소주잔을 부딪치며 “정말 자랑스럽다. 국제대회에서 애국가 듣기는 1984년 아시아청소년대회 우승 이후 처음이다. 다 너희 덕분”이라며 칭찬했다.
○ 철저한 맞춤형 연구
허 감독의 이미지는 사실 ‘뜨거운 가슴’ 쪽에 가까웠다. 감독에게는 ‘차가운 머리’도 필수. 대표팀은 김주성과 하승진의 공백으로 골밑이 약화됐다. 훈련 기간도 3주 남짓으로 짧았다. 그래서 수비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게 주효했다. 상대 팀 컬러에 따른 변화무쌍한 지역방어로 네 경기 평균 실점 65.5점의 ‘짠물 농구’였다.
강정수, 강양택 코치는 매일 다른 팀 전력 자료를 허 감독에게 제공하느라 밤잠을 줄여야 했다. 허 감독과 중고교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KCC 최형길 단장은 “허 감독은 노력파로 유명했다. 잠자리에서도 공을 던졌고 아무리 힘들어도 1시간 줄넘기를 빼놓지 않았다. 지도자로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나고야=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