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한국시간) 리야드에서 벌어진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의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마지막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안영학(32·수원 삼성·사진)은 두 눈을 꼭 감았다. 뛸 때는 미처 몰랐던 오른쪽 무릎의 통증이 다시 찾아왔지만 이를 느낄 새도 없이 가슴은 벅차올랐다. 평생의 목표였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현실이 된 순간. 이날 새벽 안영학과 직접 통화를 한 측근에 따르면, 안영학은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너무 기쁘다”는 말만 여러 차례 되뇌었다.
○되풀이될 뻔했던 4년 전 아픔 이겨내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는 것은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일단 바늘구멍과도 같은 지역예선의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안영학은 한 차례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2006독일월드컵 예선 당시 북한대표팀의 일원이었지만 팀은 최종예선에서 일본, 이란, 바레인에 밀려 1승5패로 꼴찌에 그쳤다. 특히 분수령이었던 2005년 6월 일본전을 앞두고 왼 발목 부상을 당한 게 뼈아팠다.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소집됐지만 결국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고, 팀의 0-2 패배를 쓸쓸히 지켜봐야 했다. 4년 만에 다시 찾아 온 기회. 하지만 하늘은 이번에도 안영학에게 쉽사리 월드컵을 허락하지 않았다. 4월 말 훈련 도중 오른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으로 10일 이란, 18일 사우디와의 2연전을 앞두고 대표팀 합류가 불투명했다. 수원 구단 역시 차출을 반신반의했지만 가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너무 강해 막을 수가 없었다. ‘꾹 참고 2경기만 더 뛰자.’ ‘의지’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대표팀 소집 전까지 소속 팀에서 볼도 만져보지 못한 채 재활만 했던 안영학은 이란, 사우디전 모두 풀타임을 소화하며 펄펄 날았다.
○든든한 동료들이 있기에
안영학은 2005독일월드컵 예선 때 중앙이나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뛰며 공격의 첨병 역할을 했다. 태국과의 2차 예선에서는 2골을 넣으며 팀의 4-1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지금은 다르다.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궂은 청소부 일이 그가 맡은 역할. 화려함은 덜 해졌지만 팀 전력은 더욱 탄탄해졌다. 홍영조와 문인국, 정대세는 안영학을 대신해 상대 골문에 볼을 꽂아 넣어 44년 만의 본선행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낸 든든한 동료들이었다. 안영학은 경고 누적으로 뛰지 못한 4월 한국전을 제외한 최종예선 7경기에 선발로 나와 그중 6경기를 풀타임으로 뛰었다. 팀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