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들에게 야구를 시키겠는가’란 질문에 이승엽이 “절대로 안 시킨다”고 답한 기억이 납니다.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였습니다.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승엽의 번뇌가 여기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요? 한국과 요미우리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정작 자기 자신의 즐거움은 증발돼버린.
#얼마 전 일본의 한 언론사 요미우리 담당 기자와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기자는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인 파도를 탈 수 있는 것인지 곁에서 보는 나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다만 “추측건대 심리적 문제”라고 조심스레 진단했습니다. 몸도 아프지 않고, 동료들과 관계도 문제없다고 합니다.
#그의 어깨에 짊어져 있는 ‘국민타자’ ‘요미우리 4번타자’ ‘최고 연봉타자’란 굴레가 그에게 야구를 무겁게만 느끼게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 국민타자가 하루아침에 ‘나라망신’이라 질타 받을까봐 우려도 되네요. 그런데 이승엽이 애국하러 요미우리에 간 것인가요? 애국은 무엇일까요? 광장으로 뛰쳐나와 세상을 뒤엎자는 ‘혁명’을 노래하면 되나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에서 통찰한대로 그런 사람들에 의해 혁명이 이뤄진다고 세무서 공무원이 갑자기 친절해질까요?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는 위인치고 제대로 된 경우를 거의 못 봤습니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공자의 진리입니다. ‘선수는 선수다우면 되고, 감독은 감독다우면 되고 KBO 총재는 총재다우면 그것이 곧 자신의 이익이고 공동체의 이익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그 ‘다움의 철학’이 실현될 때 세상은 진보한다고 믿습니다. 지금 이승엽은 할 바를 다하고 있답니다. 결과야 어찌됐든 이승엽다움을 잃지 않고 있으면 된 것 아닐까요?
[스포츠부]
[화보]‘아시아의 거포’ 이승엽, 그가 걸어온 야구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