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님 한 번만 더요. 네?” 두산 김현수(21)은 요즘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최근 타격감이 급격히 나빠진 탓에 훈련 때마다 김광림 타격코치에게 ‘한 번 더’ 볼을 쳐보겠다며 조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5경기에서 김현수의 타율은 0.125(16타수 2안타)에 불과했다. 0.413까지 올라갔던 타율도 어느새 0.372로 뚝 떨어졌다. 늘 “떨어질 때도 됐죠”라며 덤덤하게 말하지만 팀이 질 때 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승부욕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수라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김현수는 21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 더블헤더 2경기에서 그동안의 부진을 싹 씻는 만루홈런을 터트렸다.
SK와의 더블헤더 2경기 4회 2사 만루 상황. 김현수는 SK 엄정욱의 147km의 묵직한 직구를 잡아당겨 중견수 키를 훌쩍 넘긴 만루홈런을 터트렸다. 2-1로 아슬아슬하게 앞서 나가던 상황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알토란’ 같은 홈런이라 더욱 값졌다. 김현수가 만루홈런을 터트린 건 프로 데뷔 첫 번째다. 신일고 2학년 때 황금사자기 고교대회에서 당시 야탑고 투수였던 윤석민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친 후 생애 두 번째.
그의 활약은 만루홈런에 그치지 않았다. 김현수는 2-0에서 1점을 추격당한 3회 2사 1루에서 박재홍의 잘 맞은 타구를 몸을 날려 잡는 호수비로 실점 위기를 넘겼다. 이 과정에서 펜스에 부딪쳐 쇄골 부근에 타박상까지 입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데뷔 첫 만루홈런을 친 것에 대해서도 그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앞 타자들이 볼넷으로 나갔기 때문에 투수가 적극적으로 승부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 방망이를 적극적으로 휘둘렀다”며 “운이 좋아 홈런이 됐다. 데뷔 첫 만루홈런이지만 단지 홈런 한 개 더 친 것과 똑같다”고 그다운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을 걱정해주는 주위 사람들에게 호소하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요즘 안타가 안 나와서 컨디션이 안 좋은 게 아니냐고 물어보는데요. 오히려 최근 컨디션이 더 좋아졌다니까요.” 이렇게 말하기까지 그동안 고민과 불안감이 적지 않았겠지만 이날만큼은 그의 목소리에 남다른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문학|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사진ㅣ김종원 기자 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