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 자폭야구? 시위인가 져주기인가

  • 입력 2009년 6월 27일 09시 13분


‘6·25 시프트’ 그 후

SK 김성근 감독이 25일 광주 KIA전 연장 12회초와 말 잇달아 선보인 ‘희한한’ 용병술과 ‘자폭성’ 수비 시프트가 묘한 여운과 파문을 낳고 있다. 하루가 지난 26일 잠실, 문학, 대전, 광주구장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잇따랐다. 당사자인 김성근 감독은 문학 LG전을 앞두고 나름대로 성의 있게 해명을 시도했지만 ‘6.25 시프트’로 명명된 SK의 기상천외한 수비 포메이션은 상대방이었던 KIA를 비롯한 여러 팀들로부터 공분을 사는 한편 올 시즌 도입된 ‘무승부=패배’의 기형적인 승률계산방식을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리는 계기가 됐다.

○광주에선 무슨 일이?

25일 광주 SK-KIA전. 5-5 동점이던 연장 12회초 2사 후 김성근 감독은 투수 김광현을 ‘깜짝’ 대타로 기용했다.

12회말에는 3루수 최정을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리는 동시에 우완 셋업맨 윤길현을 1루수로 기용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는지 모른다. 최정이 안치홍에게 3루타, 이성우에게 볼넷과 무관심 도루를 허용해 무사 2·3루로 몰리자 김 감독은 2-3루 간에 유격수, 3루수와 더불어 2루수를 집어넣었다. 1-2루 간은 텅 비고 말았다. 최정의 2구째가 패스트볼이 되면서 3루주자 안치홍이 득점, KIA가 6-5로 승리했지만 불쾌감을 느낀 일부 관중은 물병 등의 오물을 던지며 괴상망측한 승부에 결연히 항의했다. SK 입장에서는 5-5로 비겨도, 5-6으로 져도 승률은 마찬가지인데 이 대목에서 ‘오해’의 소지는 다분했던 것이다.

○이기고도 찜찜한 KIA

SK와의 주중 3연전은 KIA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전이었다. 게다가 앞선 2게임에서 1무1패로 뒤진 처지라 25일 KIA는 승리가 절실했다. 26일 광주 히어로즈전을 앞두고 KIA 조범현 감독은 “안치홍이 3루타 쳐서 이겼지”라고 농담을 건네면서도 12회말 상황에 대해서는 “나도 정말 궁금하다. (김) 감독님 속을 누가 알겠느냐”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타자 김광현과 투수 최정’에 대해서는 “(대체)선수가 없었으니까”라고 답했지만 시프트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안치홍은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창피해서 방송 인터뷰도 안하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KIA 선수단은 상대가 SK 김성근 감독인지라 대체로 말을 아꼈지만 “이기고도 화가 난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특히 시프트에 대해서는 “모욕감을 느낀다”는 선수들도 있었다.

광주의 한 택시기사는 “야구장 찾은 관중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다”고 꼬집었고, 25-26일 이틀 연속 광주구장을 찾은 한 관중은 “이기고도 열 받는 건 어제가 처음이다. SK 선수들도 불쌍해 보였다”고 말했다.

○침묵은 말보다 강하다!

아슬아슬하게 선두를 달리고 있는 두산 김경문 감독은 신중하게 반응했다. 그는 “어제 재미있는 상황이 많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무슨 말 못할 이유가 있었겠지 않나”라면서 “SK의 고의적인 ‘져주기’는 말이 안 된다. KIA와도 2게임 반 차이인데 앞으로 순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감독이 그러겠나”라고 되물었다.

김경문 감독은 ‘이례적으로’ SK와 김성근 감독을 두둔했지만 다른 감독들은 극도로 말을 삼가는 쪽이 주류를 이뤘다. 한화 김인식 감독은 “몰라요, 몰라”라며 취재진의 질문을 아예 차단했는가 하면 삼성 선동열 감독도 “상황을 신문으로만 봐서 잘 모르겠다. 투수가 없었던 것 아닌가. 감독 입장에서는 12회 경기에서 비기는 게 참…”이라며 말을 삼갔다.

그러나 코치들은 좀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야구를 비롯한 체육계 전반의 불문율인 위계질서 때문에 대부분 익명을 전제로 했지만 두산 A코치는 “(시프트 상황에 대해) 선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것 같긴 하다. 그 상황 자체가 선수들 기운 빠지게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고, 삼성의 B코치는 “만약 무승부에 대한 항의표시라면 시즌 후에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렇게 경기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단 정해진 룰에 대해서는 따라야하는 게 맞다. 선수들 기운 빠지겠더라”며 혀를 찼다.

한화의 C코치와 롯데의 D코치는 약간은 다른 각도에서 시프트 상황을 분석한 뒤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C코치와 D코치 모두 “그런(무사 2·3루) 상황에서는 외야수들을 내야쪽으로 당기는 시프트가 일반적”이라고 강조했다. D코치는 또 SK 내야진이 시프트 상황에서 당황하던 모습이 떠올랐는지 “원래 시프트는 캠프에서 충분히 준비해둬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D코치는 특히 김성근 감독이 이만수 수석코치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해 엉뚱한 수비를 방치해뒀다는 해명을 전해 듣고는 굳은 표정으로 “감독이 그러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소설은 현실화할 수 있는 허구!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무승부를 방지한다는 명목 하에 올해부터 승률산정시 승수를 게임수로 나누는 방식을 새로 도입했다. 승수를 승패의 합으로 나누던 기존 방식과 비교하면 무승부도 패전과 마찬가지인 결과가 수반된다. 시즌 초부터 현장에서 불만이 터져나온 이유다. 25일 광주 경기는 실제 김성근 감독의 의도가 어땠는지를 차치하고 새 승률계산방식이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의 극단적 사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포스트시즌과는 무관해졌거나, 상대를 고를 필요성을 느낀 원정팀이 연장 12회초 득점하지 못할 경우 홈팀에게 승리를 헌납할 수도 있다는 ‘소설’이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이 때문에 25일 광주 경기는 앞으로도 여러모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길 전망이다.

정리 |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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