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 전자카드로 유소년스포츠 싹 시들면…

  • 입력 2009년 6월 29일 02시 59분


홍명보 청소년대표팀 감독 기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째에 접어든다. 몇 달 전부터 20세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다 보니 그 나이 또래 선수들은 물론이고 학원 지도자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그들과 축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언제나 국내 유소년 축구의 환경 문제로 결론이 모아진다. “과거에 비하면 여건이 정말 좋아졌지만 축구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이 일선 지도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좋아진 점을 말한다면, 유소년 선수들이 맨땅에서 경기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최소한 공식 대회는 인조잔디 아니면 천연잔디 구장에서 한다. 지도자에게 해외연수 기회도 많이 주어진다. 올해부터는 토너먼트 대회 대신 초중고교 학원 주말리그가 시작됐다.

미흡한 점을 꼽으라면 끝이 없겠지만, 유소년 선수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연습 시설과 지도자들의 열악한 대우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월드컵 진출국 중에 초중고교 선수의 80% 이상이 맨땅에서 훈련하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20세 청소년대표팀 선수 중에는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 와서 처음으로 천연잔디에서 연습했다는 선수도 있다. 중학생 정도 되면 축구 기술은 거의 완성되는데, 그 중요한 시기에 맨땅에서 연습해 왔으니….

현역 시절 국제대회에도 자주 나가보고 일본과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해본 경험에 비춰 볼 때 스포츠에 대한 투자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그것이 힘들다면 기금을 조성해서 하는 방법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스포츠토토 사업으로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국내 축구 여건이 옛날보다 좋아진 것은 토토 수익금으로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깔아주는 일에서부터 유소년 축구클럽 육성, 초중고교 주말리그, 대학축구 U리그, 아마추어 K3리그의 운영비는 대부분 토토 지원금에서 나온다고 들었다.

축구뿐 아니라 야구, 농구, 배구 등 토토 수익금을 통해 활로를 찾은 유소년 스포츠는 한두 종목이 아니다. 각 경기단체로 유입된 기금 중에 일정 비율을 반드시 유소년 스포츠 발전에 쓰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토토 구입 시 실명 확인을 위한 전자카드 제도를 도입하는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정책을 만드는 당국자는 나름대로 고민했겠지만 토토의 사행성만을 부각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들리는 말로는 전자카드 도입으로 토토 매출이 50%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결국 토토 수익금에서 나오는 기금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모처럼 자리를 잡아가는 유소년 스포츠와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악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축구는 물론 대한민국 체육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홍명보 청소년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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