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대관령 자락에 있는 선자령(해발 1157m)은 겨울철 눈꽃 산행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린다는 그곳에는 2, 3월이면 겨우내 쌓인 눈이 1m가 넘는다. ‘백두대간의 전망대’라고 불리는 선자령 정상에 서면 발왕산, 계방산, 오대산, 황병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멀리 강릉시 너머 동해까지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 내리막… 시소 타는 듯
아쉽게도 기자는 이런 장관을 보지 못했다. 심할 때는 10m 앞 사람의 뒷모습마저 희끗거릴 만큼 지독한 운무가 산을 온통 휘감은 탓이다. 장마철인 요즘은 운무가 짙다. 이동일 등반대장은 “선자령에 여섯 번 올랐지만 항상 안개가 많이 꼈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영서와 영동을 가르는 대관령은 ‘구름도 쉬어갈 만큼’ 넘기 힘들다고 하니 잠시 쉬어가는 운무를 탓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선자령 등반은 힘들지 않다. 산행의 출발점인 대관령휴게소(840m)에서 정상까지 표고 차는 317m. 길도 완만하고 선자령 정상에 선 뒤 돌아오는 타원형 코스였다. 거리는 약 10km.
초복(7월 14일)을 열흘 앞둔 4일 선자령을 찾았다. 여름 휴가철을 앞둬서인지, 아니면 동쪽으로는 강릉시, 서쪽으로는 평창군 등 대표적인 관광지를 곁에 둔 탓인지 휴가를 떠나는 기분이었다.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서 시작하는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자 우거진 산길이 등산객을 맞는다. 전날 내린 비에 외줄 오솔길도, 길 옆 수풀도 흠뻑 젖었다.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아 원시림에 들어온 듯하다. 길은 부드럽고 푹신해 발을 뗄 때면 땅이 살짝 등산화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세계탐험협회 김진성 본부장은 “무릎에 부담도 없고 산이 우거져 산림욕에 적격이다. 최적의 트레킹 코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늦가을 단풍-겨울 눈꽃 매력적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시소 타듯 두 시간쯤 걷자 “우웅∼” 하는 때 아닌 기계음에 당황했다. 알고 보니 능선을 따라 설치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짙은 안개 때문에 기둥의 밑동밖에 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 정상에 서면 산자락을 따라 수십 개의 풍력발전기가 장관을 이룬다고 현지인은 설명했다. 하지만 산 정상에서 듣는 기계음이 달갑지만은 않다. 정상은 농구장만 한 크기로 평평했다. 정상을 알리는 6m가량 되는 거대 표지석은 위압적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렸나 싶다.
평창=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