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가장 든든한 후원군이죠. 제가 어려울 때마다 항상 옆을 지켜줬어요. 그저 말없이 제 옆을 지켜주지만 그것 하나로 큰 힘이 됐습니다.”
4월 1일 북한과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때 일이다. 허 감독은 꼭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표팀을 맡은 뒤 북한과 4연속 무승부를 해 주위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최 씨는 북한과의 경기 다음 날 목 디스크 수술을 받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허 감독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한 달 전부터 입원 치료를 권했지만 “남편이 맘 편히 경기에 임해야 한다”며 미뤄왔다. 결국 허 감독이 북한을 1-0으로 꺾은 뒤에야 “여보, 나 내일 수술해”라고 말했다.
“솔직히 너무 미안했어요. 그리고 감사했죠. 평소 가정에 신경 쓰긴 했지만 대표팀 감독이라는 핑계로 아내에게는 너무 무심했어요. 그래서 수술하는 날 하루 종일 병원을 지켰습니다. 처음에는 제게 아무런 얘기도 해주지 않은 아내가 얄미웠지만 그런 아내가 있어서 대표팀이 7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허 감독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강조한다. 1991년 포항 스틸러스 사령탑을 맡을 때부터 그랬다. 코칭스태프 가족을 불러 파티를 자주 했다. “집안이 편해야 밖에서도 일이 잘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허 감독은 요즘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가족 동반 모임을 자주 갖는다. 이 자리엔 부인 최 씨는 물론 맏딸 재영과 사위, 그리고 둘째딸 은까지 참석시킨다. 허 감독은 지난달 말 남아공 현지답사 때도 최 씨와 함께했다. 아내와 함께 있어야 맘 편히 월드컵을 구상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바로 비난이 쏟아지는 대표팀 감독은 외로운 직업입니다. 아내가 저를 이해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니 일이 잘 풀렸습니다. 내년 월드컵 때도 아내의 내조가 절실하죠.”
1980년 최 씨와 결혼한 허 감독은 한때 보증을 잘못 서 가계가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아내와 함께 이를 잘 극복했다. 18일 결혼 29주년을 맞는 허 감독.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은데…”라며 활짝 웃는 그에게서 따뜻한 아내 사랑이 느껴졌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